길이 끝나는 곳에서

 

 

China Jilin Tumen

 

이리저리 꿈을 꾸다 잊어버린 현실의 세계를 찾아보려, 다시 정신없이 살아가다 잊어버린 꿈의 세계 또한 잊어버렸다.

이상과 같은 현실을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혜택된 것일까?

꿈과 현실을 잊고 있는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지, 꿈을 위해 현실을 살아야하는지, 현실을 위해 꿈은 숨겨둬야 하는 지,

형이상학을 지우개로 풀려하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형이하학을 도피처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정상과 비정상속에 스스로에게 정상이되고픈, 비정상적인 '我'이지 않는가!

답이 없는 이 비정상은 스스로에게 완벽하지만 아직은 인정 받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개성을 열심히 지워 다시 백지로 돌아가는 순간에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도피처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뿌리쳤을 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타인에게 시선을 받기 위하여 오른손을 들어 수많은 낙서를 지울때도, 왼발을 들어 달아나야 하는 때도, 아직은 아니다.

길이 끝나는 곳이라고 생각되던 곳에는 다른 문이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문을 지나지 못하는 곳이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리 넓게 열려있는데도 말이다.


홀로 정체된



두만강



연변을 떠나온지 벌써 강산이 변한다는 10여년의 세월이 거의 흘렀건만, 


아직도 나의 마음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보다.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준 한번의 과정이 있었던 장소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삶에 대한 길을 알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선택 때문에 삶은 더욱 힘들어 졌고, 점점 구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무리 현실은 힘들어도 내게 준 정신적인 가치는 평생을 지탱해 줄 수 있기에 뜻 깊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왔건만 10년 전 그 시간에 아직도 정체 되어있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마치 10년이란 시간이 증발해 버린 것 같다. 


저 사진을 찍은 것도 내년이면 딱 10년이 된다. 요즘 다시 저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10년에 강산은 말로 변한다하지만 아마도 나처럼 사진 속의 공간은 변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에 중국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다음에는 꼭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 연변에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아직도 그 소망은 머나먼 이야기 같다.


지금은 나의 소망도 희석되어 내가 저곳에서 딱히 다시 바라는 것은 없다. 


그저 단순히 떠오르는 것을 말하자면, 오염 되어 있었던 두만강이 다시 푸른 물이 되었으면 하는 것 정도이다.


오랜 시간은 지났지만 어떤 면에서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은 많다.


하루 하루가 다람쥐 챗바퀴 돌듯 반복되듯이, 나의 삶은 제자리이고 한반도의 모습도 그대로이다.




세상과 개성의 불협화음



창을 바라보는 빈 자리




욕망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구속하는 세속의 정신일 뿐


이상을 방치하기 위한 유희는

갈구하는 정신의 가치일 뿐


모두 반복하는

호흡의 모습으로도 소용 없는 짓


작은 가슴앓이

미련의 마음으로도 용서 없는 꿈


짧은 충동 잃기 싫어

악송에 팔아버린 정신


깊은 심성 얻기 싫어

악야에 던저버린 가치


단지 수많은 인파의 

일원으로 살아가길


그저 떠도는 와언의

한마디로 퍼저가길


이제 그만

제발 그만


                    - 나의 詩 '허공에 던진 꿈' -





세상은 신기하다. 나약한 사람을 다룰 줄 안다.

기쁨을 주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깊은 슬픔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마치 무언가에 의해 조종 되어지듯 삶에 이끌려 지내게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종이 내음 알고 싶어 

거친 쇠덩어리에 진한 액체를 뭍혀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 속에 빠져 또 한번 감정을 바뀌게 하고 있는

이 세상은 참 재미있다.


자신은 스스로 세상과 다를 수 있는 개성의 테두리을 만들어 

단 하나의 영혼으로서 삶을 즐길 수 있지만 

간섭하기 좋아하는 세상이란 녀석은 그 벽을 가만 두려하지 않는다.

한시도 내벼러 두지 않고, 

허물어 버리고 싶어하고 낙서하고 싶어하고 넘고 싶어한다. 

사회성 속에 인류 공통이란 말 속에 자신의 테두리가 아닌 

세상이 좋아하는 허무한 위요지가 그렇게 만들어지나 보다.


결국 세상도 두려운 것이었을까.

의미를 붙일 줄 아는 인간이란 동물이 떠나간 빈자리의 외로움을 알고 있는 것이기에

그리도 특징이 없는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을까.


한심한 것은 어느덧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하나의 영혼은 이미 훌륭한 세상의 주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타협이 없다고 생각한 추억 속에는 어느새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내가 있었다.





색을 받는 시간




시커먼 건물의 안쪽에는 어둠만이 존재한다.


녹이슨 작은 문을 밀어보니 삐그덕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들어온다.


어둠의 공간은 쉽게 빛에 정복되어 색을 찾아 간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나 또한 나의 색을 찾아 간다.




투과하다





불투명한 창을 희미하게 지나치는 빛은... 


고달픈 여행을 위해 어둠으로 온 것일까


만연한 어둠을 밝히기 위한 희생일까




透 過




홀로서기



잠시 지쳤다고, 조금만 쉬고 싶다고, 

아니 이제 됐다고, 모두 필요 없다고, 그저 내버려두라고.

이런 말을 수없이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저런 신세 한탄 한번쯤 펑펑 울며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줄 이가 없다.

단지 자아라는 몹쓸 추상적인 한 사람뿐 이었다.

그걸로 됐다.

잠시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숨 한번 깊게 쉬고, 

무거워진 두 다리에 기대어, 너무나 가벼워진 몸을 일으킬 수밖에...

그걸로 됐다.

아직 너는 숨쉴 수 있고, 아직 너는 설 수 있다.




내가 아닌 나




누군가가 결혼에 대해 사과 하나를 놓고 반으로 자른 후 다시 붙이며 

'원래 하나인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반 쪽은 본디 당신이었던 것인가요?

남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될 사랑을 하고 있나요?


여행을 기다리는 빈자리


바다 한 가운데 객실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추운 겨울에 한 꽤 오랜시간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나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배가 하도 흔들려 갑판에 나가보니,

칠흑 같은 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거친 바람으로 인한 공포감과 바다 위로 내리는 눈의 황홀함이 동시에 찾아왔지만,

동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멀미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배에서 내려 바로 심한 감기에 걸려 여행 첫날은 숙소에 혼자 누워 고생한 기억이 납다.

그러고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무작정 도착하여 길을 헤매고,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것들을 먹어대고,

너무나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때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훌쩍 어딘가로 떠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제 각각의 생활로 바쁜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든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객실 안의 테이블.

사람은 어느덧 떠나고, 여권과 티켓만이 남아 언제 올지 모를 다음을 기약한다.

이제는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야겠다.

추억은 가슴 속에 묻어 두고, 함께 여행할 누군가를 위한 기다림의 여행을 떠나야겠다. 



국경이 무엇인지


중국 도문시와 북한의 남양시를 연결하는 다리



주말이 되어 단조로운 일상을 깨고자 친구들과 연길에서 가까운 도문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도문시는 두만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로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도문에 가보면 중조국경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바로 중국과 조선의 국경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한국에서는 남한과 북한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북한이란 말은 쓰지 않고, 조선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의 서점에서 파는 지도를 사서 보면 모두 북한은 '조선', 남한은 '한국'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어찌보면 이제는 점점 한반도는 한 국가가 아닌 다른 두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너무나 닮게 생긴 한 민족인데 말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 같지만, 마음속에 숨어 있는 정은 있지만, 권력과 아집이 모여, 이데올로기라는 껍데기를 쓰고,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를 넘어 간도에는 조선족이라 불리우는 민족이 있다. 

그들은 또 한국도 조선도 아닌 중국에서 중국의 인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명칭 때문인지, 한국인도 아닌 중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또한 한족과 소수민족과의 차이가 있듯, 중국 내에서도 그리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는 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에도 많은 한족들이 뿌리를 내려 누가 조선족이고 누가 한족인지 구분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단지 소수민족의 보호를 위해 상점에 내놓은 간판에 한글이 적혀있는 것을 보며 이곳이 조선족들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연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중국속의 작은 한국 같다. 

중국에서도 인터넷 속도가 연길만한 곳이 없고 24시간 PC방과 노래방, 찜질방이 운영되고 있다. 

상점들도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며 부지런하고 근면한 민족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덕무침, 설렁탕, 비빔밥, 파전, 냉면 등 한식은 한국에서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한국에서 나오는 드라마와 음악,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한국에서 온 저보다도 빨리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미용실, 식당, 숙박업 등을 열며 더욱 한국의 문화를 그대로 심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벽시장의 모습과 사람들과의 삶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외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느 날은 작은 기숙사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조선족 후배가 들어오는데 그 친구는 성이 '김'씨였다. 

어디 김씨인지가 갑자기 궁금해 물어 보았다. 

과연 조선족들은 본관이 있을까, 그리고 그곳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이였다. 

그 친구는 너무나도 자주 듣던 말을 했다. 

"김해 김씨 입니다." 

그 옆에 있는 친구에게 또 물어보니 역시나 너무 익숙한 말이었다. 

다른 친구는 '파평 윤씨'라고 한다. 

연길에 와서 늘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지만, 나는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이라는 느낌을 스스로도 가지고 있던 때에, 

이미 예상은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익숙한 본관을 듣고 나니, 

'저들이 나와 오랜 세월 전에 태어났다면 돌아갈 곳이 아닌 바로 이웃에 살고 있었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잔잔한 파문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곳 간도라는 곳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고통에 못이겨 한반도를 떠나 잠시 장소를 옮긴 바로 이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선족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만주와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피를 흘리던 사람들의 후예였다. 

그들과 함께 일송정에 올라 해란강을 바라보았다. 

그들과 윤동주 시인이 어린 시절 살던 집 뒤편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도 했다. 

그들과 술을 마시며, 축구를 하고, 여행을 가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저를 이방인이 아닌 친구로 대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작은 연못을 보았다. 

그 연못을 보고 있자니, 두만강이 생각난다. 

멀리 간도에서 두만강을 보았을 때에는 한반도의 남쪽 끝이 멀지 않다 느껴졌는데, 

한국의 작은 연못을 보고있으니 한반도의 북쪽 끝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마치 저 연못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연꽃들의 삶이 우리 민족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겠지.


추억의 공간은


YUST '낮은음자리'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 한 곳 쯤은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을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퍼지고 옛 추억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행복한 곳이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그때가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나에도 그런 공간이 있고, 쉽게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 YUST 대학 안에 위치한 카페인 '낮은음자리'라는 곳이다. 어찌보면 저곳이 모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버린 곳이다. 생각과 성격, 가치관, 인생에 대한 추구 등 모든 것에 영향을 준 곳이었다. 하지만 처음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의도하지는 않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다가온 학기에 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학교에서 외국에 보내주는 많은 제도가 있는데, 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과 자체에서도 일본에 보내주는 것이 있었고, 그 말씀을 하실 때에는 학교의 국제교류원 측에서 영어권과 중국, 일본으로 보내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었다. 영어도 엄청 못하고, 중국어와 일본어는 도통 모르던 나에게 그런 것은 좀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그렇지만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언가를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에 왠지 모르게 이끌리는 심정이 생겨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이 원서를 내보았다. 믿을 만한 것은 거창하게 쓴 자기소개서와 꽤나 잘 관리했던 학점뿐이었다. 교수님 추천서, 학과장님 추천서도 힘들게 받고,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았다. 그것도 마지막의 순서로 면접을 보러 들어가니 함께 들어간 사람들은 왜이리 말들을 잘하는지, 감탄을 하며 어떤 말들에 대해 답을 하고 나온 것은 같은데,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도 모르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을 할 때에 생각치도 않게 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간 국제교류원에는 재미있게도 마지막에 면접을 들어간 4명이 그대로 마지막 면접에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같이 선발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들도 '저 사람들은 뭐 길래 저리 말을 잘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도 실수한 것 같을 때 안 되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낯선 외국 땅에서의 삶이 시작되고, 그전에 살아오던 모든 과거를 잊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게 된 학교는 시설은 미약했지만, 교육이라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교수님들은 학교 안에서 생활을 함께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밤에도 학교 안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이 있으면 자연스레 옆자리를 차지하고 또 다른 배움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거의 발표와 토론, 실습으로 이루어지고, 수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친한 교수님의 가족과는 함께 한적한 시골로 MT를 가고, 젊은 교수님과는 농구를 함께 즐기며,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났다. 


한번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학교 앞 황폐한 곳에 나이가 지극하신 교수님과 함께 코스모스를 심은 기억도 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기숙사에서의 룸메이트들과의 만남, 교수님과의 약속, 한국 학생들과의 모임, 과수업을 위한 모임, 조별 모임, 현지 사람들과의 조우 등 늘 쉴 틈 없이 계획이 잡혔고, 거의 3달 정도의 스케줄이 미리 잡힌 생활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 틀에 박혀있던 인생은 점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과 영향을 준 학교의 장소 중에서도 바로 사진에 있는 장소가 기억이 난다. 학교 안에 있는 카페인데, 돈은 대충 지불하고 자신이 커피를 타마시고, 도넛이나 샌드위치는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하루의 시작은 늘 저곳에서 부터였다. 공부도 만남도 휴식도 대화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곳이다. 언제든지 저곳에 들리면 친구들이 앉아 있었고 환한 미소로 대해 주었다. 어쩌다 친구가 없으면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고, 친구들과 준비한 공연도 하며, 재미있는 노래자랑도 즐기던 곳이다. 그리 편안한 의자도 아니었고, 그리 맛있는 커피는 아니였지만, 타국에서의 생활에 안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왠지 지금도 저곳의 문을 열면 아무런 걱정도 없고, 슬픔도 없고, 단순하며, 순수하게 저를 대해주던 친구가 웃으며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소중한 추억의 공간은 어느 곳인가? 

생각만해도 자연스레 미소가 퍼지는 그곳. 잠시 생각하며 지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잠시 뒤돌아 즐거운 공간과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 행복한 오늘을 살기위해서 말이다.




북망산 하늘


중국 길림성 연길시 북망산의 하늘




떠나간 이들을 위한 하늘인가,,

살아갈 이들을 위한 하늘인가,,

그저 욕망을 숨기기에 좋은 하늘이구나,,




 

 

홀로...

     종이에 남겨 놓은 생각들

 


 

#1. 종이에 담은 하루


요즘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애매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많이 바쁘기도 했고, 많이 정신 없기도 해서, 어떠한 생각이란 것을 갖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저 피곤해서 쉬고싶고, 어떤 의욕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음 속이 공허하고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빈 종이를 놓고 어떤 것을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은 하루였고, 그것을 채워나가 만족감이 드는 하루였다.

 

 

 



#2. Cafe


처음 이 카페에 온 것은 늦은 밤 닫혀 있을 카페 들 중 열려있을 카페를 찾아 온 것이었다. 늦은 밤이라고하기가 어울릴 10시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하여 커피와 카페를 무척 좋아하는 스스럼 없는 친구와 함께 칼디9에 들렸다. 처음 이 카페에서 느낀 것은 고급지다. 고풍스럽다. 는 느낌... 약간은 추운 날씨에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오르고, 인상적인 긴 테이블하나와 중세유럽의 성의 천장에 걸려 있을 듯한 거대한 등이 테이블 위에 있던 곳, 높은 천장은 답답함을 없에 주어 기분이 좋았다. 친구와 함께 늘 주고 받던 대화를 하던 중에 카페지기님과도 대화가 시작되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마음에 서로의 관심사기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커피, 아이템, 필기구 등 공감이 형성되어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특히 혼자 있고 싶을 때에 찾아오게 되는 곳이 되었다.

 

 

 

 



#3. 카페는 커피 맛...


상당히 많은 카페를 들려온 것 같다. 프랜차이즈, 그리고 개인 상점이 이르기까지 벌써 카페에 대한 포스팅도 120여개가 되어가고 또 늘 새로운 카페를 찾아나서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카페를 찾아 새로운 커피 맛을 느끼는 것이 나와 어울리는 취향이다. 그래서 한번 들렸던 곳은 자주 못게가 되지만, 그런 곳 중에서도 다시 들릴 수밖에 없는 카페는 분명 존재한다. 밀로커피로스터스, 테일러커피, 미소레, 쌍리, 1380 같은 기분 좋은 카페는 다시금 발걸음을 찾게 해준다. 이러한 카페는 내가 즐기는 주관적인 커피 맛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카페를 찾게되는 기준은 가장 중요한 것이 분명 커피의 맛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변하게 된 곳 중에 하나가 오늘 들린 카페이다. 언젠가부터 간간히 들리게 되는 카페인데,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날, 커피가 생각나 무심고 다시 들리게 되었고, 그 뒤로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때, 삶에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때 들리게 되었다. 분명 커피 맛 자체로는 이곳 보다 괜찮은 카페는 주변에 몇곳이 있지만, 그런 곳 보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다. 맛이 아니라고 해도, 카페에서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단골이 주는 편안함


오늘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저녁시간에 친구를 만날까 했지만, 시간이 애매하게 되어 만나질 못하였고, 피곤해서 몸 상태도 좋지 못하고, 그래서 집 안에서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전에 미리 내려 놓은 Drip Coffee가 냉장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굳이 카페가지 않고, 집에 있는 근사한 테이블에 앉아 Coffee를 즐기면 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더 많았는데, 갑자기 그냥 답답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는 단골이 된 카페 칼디9은 사실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가기에 귀찮기도 한데 - 금요일 저녁이라 가는 도중에 차도 많이 막히더라 - 막상 카페에 도착하니 기분이 풀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를 기억해 주고, 웃으며 맞하여 정겨운 커피 한 잔을 내려 주는 마음이 고맙다. 그러하기에 나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내가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5. 서비스와 선물


이 카페에 들려서는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함께든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커피를 한 잔 더 주시고, 돈을 받지 않고 원두를 주시기도 하고, 오늘은 조각케이크 한 조각을 주신다. 이렇게 받는 것을 흔히 서비스라고 하는데, 낯선 곳에서 받는 것들은 서비스라고 생각이 들지만, 자주 들리는 곳에서 서비스를 받게되니 서비스라는 것 보다는 선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비스와 선물, 받은 것은 같은 것인데 다른 단어를 사용하니 그것을 대한 기분이 다르다. 생각치 않게 받은 케이크 선물이 감사하다. 카페 또한 돈을 주고 받는 채권 채무 관계, 계약관계이지만 나 또한 돈이 아닌 선물로 그 값을 대신하고 싶다. 돈이 아닌 마음이 오가는 시간은 척박한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지만, 분명 인본주의 사회에는 어울리다는 말을 하고 싶다.

 

 

 

 


#6. 나를 찾는 시간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생각을하고, 종이에 끄적이고 있다. 카페에서 하는 가장 단순하며 기본적인 시간을 갖고 있다. 그것이 별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진정이 되며, 현실과 타인과의 만남이 지속적인 사회 속에 살며 느끼던 복합함 그리고 견딘다는 말이 어울리는 삶을 잊게 해준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돈을 벌고 타인에게 잘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고, 자신의 마음 속에 생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너무 가엾지 않은가.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종이 위에 머리 속을 맴도는 의미 없는 생각들을 끄적이고 있다. 그저 생각만하고 사라져 버릴 것들을 써나가고 있다. 사라져 버릴 뻔한 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으로 비워진 공간은 다시 책을 읽어 채운다.

 

 

 

 


#7. 사는 것은 우습다.


사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이란 존재로 타인이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영혼육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이루어 살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습은 숨겨야 한다. 경제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투지 않기 위하여, 그저 주변에 존재하는 짜증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의미가 있지만 결국 모두 살기 위하여, 자신을 오히려 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속의 자신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자신만의 생이 있고 가치관과 살아가는 법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주의에 단 하나도 없다. 그것을 알아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인데, 자신이 자신을 외면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은 존재치 않은 것이 된다.


 



산다는 것은 참 쉽고 간단하다. 태어나고 죽는 것 사이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두려움인 죽음 앞에 아둥바둥 견디며 사는 것 일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이루어지는 것은 없을 수 있다. 가장 두려운 죽음을 초월하여도 현실은 죽음보다 가혹한 환경을 주고 있다. 단지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만이 답이 될 수도 있다. 하루 하루가 다시 반복되는 고통뿐이라면 삶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하지만 죽음이란 거대한 공포 앞에 하루라는 시간을 유예하며 살다보면 신기하게도 가혹한 환경이 조금씩 변하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생명은 언제라도 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하루만 더 살고 버려도 된다. 내일 하루를 사는 것 단지 그것이다.

 

  

 

 


#8. 하루만 더 살자


두려움을 버려라.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죽음을 버려라.


무얼 두려워하는가

아무 염려 말아라.


죽음을 버리고

하루를 살아라.


하루를 살다

다시 잠에 들기 위해

잠시 눈을 감을 때에


영원히 눈을 감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 못드는 자여

잠들지 못해도

그대로 가치가 있다.

 

 

 

 

 


我找我

 


터널 속 흔들림





지금 가고 있는 인생의 길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生이란 주어짐 속에...

 

무엇에 이끌려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는 반복 속에...

 

어느 하나 맞는 것이 있는지 모르고 살 수밖에 없다.

 

 

 

단 한번의 탄생과 단 한번의 죽음 사이에

 

수많은 행복과 고통, 슬픔을 오가는 복잡한 존재로

 

불려지는 명패하나 달고 인생의 길을 걷다가

 

마지막 빛 한 번 보고 후회치 않으면 다행이리...

 

 

 

猶豫


마른 꽃닢을 보는 흐린 시야




말라 버린 꽃잎 사이로


나의 마음이 흐려, 


세상의 시야를 잃어,


초점을 잡지 못한다.




어쩜...


유리알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나의 심안은 


색을 잃지 않고 


생을 잃어버린 




꽃 잎에 비해 


하찮으리...




어쩜...


필름 속에 담겼던 나의 추억은 


시들지 않는 박제가 되어 


서서히 낡아질 뿐...




혼자가 아니야


백두산 달문 내려가는 절벽에 핀 야생화

 

  

꽃아, 몇해를 피고 지었니?

거친 화산재 옆에서, 아찔한 절벽 옆에서 오랜 세월 피고 지었겠지?

마치 우리 민족처럼 큰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날 수 있겠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꽃아, 몇 해를 피고 지겠니?

맑은 천지 옆에서, 차가운 만년설 옆에서 또 숨쉬며 피고 있겠지?

하지만 우리 민족보다 네가 더욱 부러운 것은 남아 있단다.

둘이 아니라는 것....

Gwanghwamun, AGFA Film



더운 여름에도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드는 광화문,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과거와 현재를 지나는 문.




건물을 보며 빛을 찾았는데, 실수로 하늘로 향해져 본의아니게 어둠이 찾아와 버렸다.


약간의 차이로 큰 결과가 나오는게 인생인가 보다.






광화문 앞은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회를 갖는 곳.

 

국가란 모든 사람의 만족을 시켜 줄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이 소외받는 소수인이 된다면 한없이 힘든 것이 현실.

 

집회는 헌법 상에 보장받는 고귀한 권리이지만... 과연 권리인 것인지...

 

 

 

 

 

 

 

 

  

 

서울의 길을 걷다보면, 수없이 보이는 창문들

 

저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늘은 언제나 머리 위에

 

어쩌다가 콘크리트가 가리고

 

어쩌다가 플라스틱이 가리고

 

어쩌다가 우산이 가리고

 

어쩌다가 철제가 가리고

 

어쩌다가 나뭇잎이 가려도

 

하늘은 언제나 머리 위에

 

 

 

 

 

 

 

 

 

 

 

오랜 건물은 현대적인 건물보다 더 시선을 끌다.

 

당신이 생각하는 관심은

 

미래의 꿈에 있는 것인지

 

과거의 추억에 있는 것인지

 

 

 

 

 

 

 

 

 

 

 

 

 

coffee

 

오늘도

 

Cappuiccino

 

 

 

그걸로

 

하루는 괜찮아

 

 

 

 

 

 

 

AGFA PHOTO 200 vista plus

를 기다리는 시간




구름이 많아지고, 세상이 어두워지며,

잡고 있을 빨래는 떠나갔다.

 

다른 빨래집게도 다 떠나갔는데

혼자 남아 비를 기리고 있는 것은

너 또한 나처럼 혼자 비를 맞고 싶어서 인거니,

 

잠깐만이야,

잠시 비와 함께 흠뻑 젖어

아픔, 슬픔, 외로움, 절망 모두 씻고,

 

또 당연하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자.





고요한 시간 두만강을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련만,

눈앞에 보이는 강 넘어는 너무 가깝지만, 아직은 건널 수가 없었다.

한번 눈을 뜨고 한번 눈을 감는 쉬운 세상 속에

우리는 스스로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돌리면 비워질 이상(異常)



어스프레한 한 칸의 방 안 

어디선가 들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며 

당신은 어떤 하루를 기록하려 하는 가.


지겹게도 다가오는 반복적인 하루와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즐길 준비는 되어 있는가.


위에서 한없이 아래로 채움을 이어가는 

모래시계의 윗 공간처럼 

텅빈 가슴으로 살아갈 것인가.


쓸모 없는 의미라도 담은 

자신만의 고유한 명사가 되어 


자신을 채워가는 

모래시계의 아래 어딘가처럼 

받아들이고 

다시 비워가는 EGO로 살것인가.


다 내려가버린 모래시계를 

돌리는 손은 자신의 의지이기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 

위와 아래를 돌리다보면 


수많은 반복 속에 자신을 닮은 모래알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像沙粒一样

 


세상에 잠글 수 있는 것은 원래 없었다.




네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객체는 어디로 가버린 것이니?

언제나 홀로 남아,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니?


기다림에 대한 너의 영원함은 너 혼자만의 것으로 남아 있겠지만,

오래된 것은 떠나고 언제나 새 것이 대신하고 있구나.


굳은 잠김은 마치 시간을 잡는 사진처럼 남고 있겠지만,

낡은 고집은 이제 놓아두고 홀가분한 마음을 열어보자.


Unlock







변산반도 적벽강





부안 적벽강


부안에서 마직막으로 들린 곳이 적벽강이었다. 수성당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진 적벽강으로 향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상당히 어두워진 상태여서 으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적벽강은 수성당과 가까워서인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이 있는 듯, 무속행위를 하지 말라는 푯말이 보였고, 바닷가에는 바다에 제사를 지우며 띄우는 배도 보였다. 


어두운 시간에 들린 적벽강


적벽강은 변산반도의 유명한 관광지인 채석강에서 북쪽으로 약 1㎞의 백사장을 따라가면 이르게 된다. 백사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채석강과 나뉘어진다. 죽막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를 '적벽강'이라 한다. 



이름의 유래는 송(宋)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중국 황강현(黃岡縣)의 성(城)밖에 있으며, 소동파가 이 곳을 찾아가 전후적벽부(前後赤壁賦)를 지었음)과 자연경관의 빼어난 풍치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1월 17일 명승 제13호로 지정된 적벽강은, 변산해변의 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적벽강은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어 맑은 물에 붉은색이 영롱하며, 특히 석양 무렵 햇빛을 받아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후박나무 군락 앞 해안의 암반층에 형성된 석물상 가운데 어느 것은 여인의 유방 같고, 또 어느 것은 토끼 모양을 하고 있는 등 바위 하나하나가 만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라 부르는 50㎡ 면적의 동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으로 용두를 돌아가면 검붉은 암벽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는 검은색·갈색 등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어 절경을 이룬다.


수성당에서 본 적벽강


적벽강의 몽돌해변



적벽강


주소 :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252-20

전화번호 : 063-584-0951








느리게 보여도 절망하지 말라


성공회의 예수상


"내가 계획한 일들은 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전이 실현되는 시간은 천천히, 꾸준히, 확실하게 다가온다. 

 느리게 보여도 절망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이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인내하라!

 단 하루도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합 2:3,LB)


태어나고, 아이답게 즐기고, 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지고, 성장할 곳이 없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까.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테두리 속에 또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을까.

모두 같은 틀에 갇혀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길과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는 그 열정의 순간에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열정이 타고 타다 점점 희망의 땔감이 모자라질 때에, 다시 일상의 테두리로 돌아간다.

그후 테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어두운 밤, 길을 모르는 산 속에서 마을을 찾기위해 방황하지만, 

계속 같은 곳을 맴돌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과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아마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있다. 

아직 자신도 모르는 땔감은 남아 있다. 아직 우리는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은 지구의 작은 산이 아니라 태양일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뜨거운 존재일 것이다.

인내하자!

계획한 일들이 비록 일어나지 않을 지라도.

자신의 삶을 천천히, 꾸준히, 확실히 만들어간다면, 느림과 정체는 문제되지 않으리라.

오늘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은 비록 어제 걸었던 길이지만, 

어제와는 다른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고무나무에 매달린 물방울


나의 집 정원, 고무나무에 매달린 빗방울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린다. 

아침을 느끼고 싶기에는 저 빗소리가 너무 기쁘다.

귓가에 소근 소근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다. 

왜 이렇게 비만 오면, 이불 속은 따뜻한 것인지...

훌쩍 털어버리고 싶지만 늘 부지런함과의 싸움에선 지는 쪽인가 보다.

하루를 돌이켜 보며, 그 싸움에서 이긴적은 몇 번 있을까?

공부와 놀이, 잠과 깸, 휴식과 일, 만남과 고독 이런 것들의 연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또 내일을 기약하고 또 다음을 바라며, 순간을 안주한다.

잠시 마음을 놓고 살면, 인생에 주어진 목적이 멀어진다.

그걸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래서 더욱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데,

내일 세상을 떠나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세상을 보내고 돌아왔다고, 말 할 수 있어야하는데,

과연 될까?

갑자기 번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고마운 빗소리가 고민의 빗소리로 바뀌었다.

아마도 하루이니, 기약이니, 이런 저런 물음 들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함정인가 보다.

오늘도 비는 늘 내리던 것처럼 변함없이 내릴 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자신'이라는 것 하나가 남게 되는 것 같다.

별것도 아닌 것에 고민하고 기뻐하는 인생에 후회는 없다. 

단지 그런 고민에 기쁨을 잃음에 반성할 뿐이다. 

아쉬운 것 또 반성하고 미래의 길을 위해 노력을 해보아야 겠다.

저 빗방울도 다시 대지로 바다로 하늘로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비에 그만 취하고 가야할 곳으로 돌아가 보자.

다시 비가 오는 아침에 빗소리에 기뻐하는 날을 기다려보자.








변산반도 채석강





변산반도 채석강


변산반도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가 채석강일 것이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절벽에 기괴하게 모인 퇴적암이 풍경을 압도하는 곳이다. 내게도 변산반도의 여행은 채석강이란 곳을 보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서해 바다와 퇴적암층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200m)일대의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기암괴석들과 수천수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강자가 붙어 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닭이봉 한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절경이다. 이곳의 지질은 선캠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있고,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만권의 책이 쌓인 듯한 채석강


위에서 말했듯이 채석강의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시선 이태백이 달빛 아름다운 밤, 뱃놀이를 하며 술을 즐기다 강물에 비추어진 달을 잡으러 푸른 물에 뛰어들어 그 삶을 마감하였다는 장소에서 기인하는 이름이다. 중국의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 모르지만 격포해수욕장 인근 닭이봉의 한쪽을 장식하는 채석강의 모습은 수많은 책이 높다랗게 쌓여 있는 듯한 특이한 퇴적암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격포항 방면으로 자리하는 해식동굴은 그 안쪽에서 바다와 기암, 하늘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채석강 탐방은 물때를 확인하고 찾아야 멋진 경관을 자세히 즐길 수 있다. 만조 시기의 채석강은 단순한 해안의 부드러운 모습뿐이다.


해가 지던 채석강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1월 17일 명승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12만 7372㎡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부안 채석강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퇴적암층


채석강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바다와 바위


퇴적암이 빚어내는 절경은 부산 태종대와 해남 우항리 등 우리나라 해안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이 곳 해안의 채석강은 이름 만큼이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수천만년 동안 바닷물에 깎이고 남은 바위절벽 면을 이루고 있는 자갈, 모래 등의 켜(층리)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채석강의 절벽과 해수면 부근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져 얇은 책을 연상케 하는 반면, 위는 층리가 다소 두껍게 나타나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얇은 역암층이 관찰된다. 반면 퇴적암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은 큰 바위들이 끼어있는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으며,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라는 게 전승수 교수(전남대 지질학)의 분석이다.



한편 격포항 방파제에는 채석강 절벽의 사암 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다른 퇴적암 절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는 입체적인 구조로 봐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 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거북이를 닮았던 바위


신기했던 바닥



해지던 바다





부안 채석강 (변산반도)


전화번호 : 063-582-7808

주소 :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301-1

홈페이지 : http://www.ibuan.co.kr/tour01/index.htm







 

부안영상테마파크




부안영상테마파크 입구


변산반도로 여행을와 부안 내소사를 들린 후 좀더 서쪽으로 향해 부안영상테마파크에 들렸다. 부안영상테마파크 주변에 몇몇 곳이 공사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따로 입장료를 받고 있지 않고 있었다. 


광화문 모양의 부안영상테마파크 입구


부안영상테마파크는 민속촌 개념과 촬영세트장 개념을 접목한 테마공원이다. 전라북도와 부안군, KBS 아트비전이 출자하여 2005년 7월에 완공하였다. 14만 8,400m²의 공간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양반가·서원·도요촌·한방촌·저자거리·방목장 등이 재현되었다. 영화 <왕의 남자> <음란서생> <광해> <사도> <관상> 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이산>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몇 해 전부터 역사극이나 영화를 촬영하는 세트 시설이 지방의 주요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 화려한 화면 속의 모습을 기대하고 찾은 관람객들은 촬영을 위한 필요 부분만을 강조하여 만드는 촬영 세트의 특징과 생각보다 조악한 시설이나 인적이 드문 황량함으로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돈화문


이곳의 규모는 대단하지만, 본디 고궁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살펴보기는 어렵다. 같은 드라마 세트장인 문경 사극 드라마 세트장이 좀더 느낌이 좋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주요 전각들이 복원된 왕궁 시설을 중심으로 양반가와 서원, 일반 백성의 가옥과 장터, 성터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를 따라 자리하는 모습인데, 서울의 고궁을 모두 둘려본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창덕궁의 부용지를 만들어 놓은 곳



단지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진짜 궁궐은 실내를 들어가 볼 수 없지만, 테마파크는 근정전 안을 들어가 왕의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근정전


임금의 자리에서



궁궐 테마





양반집 테마




초가마을 테마






부안영상테마파크


주소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로 309-64 (변산면 격포리 375)

전화번호 : 063-581-0975

홈페이지 : buanpark.kr/








곰소염전





곰소염전



부안으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곰소염전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 곰소염전을 들릴 계획은 없었는데, 곰소염전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카페에 들렸다가 잠시 곰소염전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곰소염전의 체엄 및 구경에 대한 플래카드가 있었지만 3월 중에는 쉬고 있는지 인적이 없고, 염전터에는 바닷물도 천일염도 없었다. 반들 반들한 바닦만이 이곳이 염전이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일염전이 몇곳이 있다. 염전이 서해안에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리 때만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 넓게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갯벌이라 해서 모두 염전을 하기에 유리한 것은 아니고, 뻘과 모래가 반반씩 섞인 혼합 갯벌이 가장 유리하다. 펄만으로 이루어진 펄 갯벌은 발이 너무 빠져서 작업이 어려우며 모래 갯벌은 바닷물이 스며들어 바닷물을 가두기가 힘들다.



음식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소금은 바닷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기계염과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수분을 증발시켜 생산하는 천일염도 구분할 수 있다. 갯벌이 넓은 서해안에서는 연료를 절약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 즉 갯벌의 염전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농축시킨 후에 그 물을 가마솥에 끓이는 방법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제염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하였고 1980년대까지도 국가의 중요한 산업이었지만 노동집약적인 산업인 관계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사양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곳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지인 이곳은 바다와 인접한 다른 염전과 달리 곰소만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바다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만들어 남포리에 있는 사창에 보관하였다가 건모포(구진)에서 쌀과 함께 노량진으로 보내졌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일제말기에 만들어졌으며, 해방 이후 천해조건의 자연의방법으로 곰소염전의 천일염을 생산하였으며, 처음엔 토판에서 옹기판으로 현재는 타일판으로 생산하고 있다. 촘촘한 바둑판 모양으로 개펄을 다져서 만든 염전에서 소금은 보통 3월 말에서 10월까지 생산되는데 5, 6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고 맛도 좋기 때문에 이 시기가 염부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곰소만의 입지 조건상 바닷물에 미네랄이 많기 때문에 소금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다른 곳에 비해 약 10배가량의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곰소염전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1





하늘 아래



공 하나 던저보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잡념 하나 던져놓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복잡해져 누워 하늘을 보니, 

정답은 바로 저 하늘위에 있었다.


모든 혼동의 시작은 바로 저 하늘,

모든 혼동의 끝은 바로 저 하늘!





바라기, 바라기



해가 뜬 대낮에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해를 바라보는 것이 해바라기가 아니었나?

해바라기가 바라보는 곳으로 향하여 서있게 되었다.

해바라기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발걸음을 들어,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를 보고 있다.

해바라기는 누구에게나 바라보게 해줄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잊고 있던 소중한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아직 세상은 혼자가 아니니 말이다.





마시러 잠자리



여름 동안 열심히 자라려고 노력한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이상하게도 많이 온 비 때문인지 잘익지가 않았다.

열매를 따지 않고 그냥 두니, 여름에는 아침 일찍 한 쌍의 새 부부가 무화과를 먹고 가더니,

가을이 오니 남아 있는 무화과를 나비와 벌들이 모여 먹고 있다.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지니 마을에 잠자리도 부쩍 늘었다.

어려서는 잠자리만 보면 잡아보고 싶어서, 

날개짓에 지쳐 잠시 쉬려 앉아 있는 잠자리를 부단히도 괴롭혔던 것 같다.

힘들게 잡아 얇은 날개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다보면, 

날개가 부러지거나 다쳐서 왜 잡았을까 하는 미안함에 당황하던 그때에는 

잠자리 한 마리를 보면서도 소중한 생명체의 비상에 감동하던 순수함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잠자리를 보면서도 '가을이 왔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쉽게 지나쳐간다. 

이제는 정말 세상의 아름다움도 즐길줄 모르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나보다.


그리고 어느 날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작은 정원에 과꽃이 피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저 녹색 줄기만 있어서 뽑아 버릴까 했지만, 

잡초 같이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두웠는데, 꽃 몽우리가 생기더니 예쁜 꽃이 나왔다.

국화가 피기 전에 작은 정원을 먼저 차지하고 앉아 자체를 뽐내는 것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밤새 비가 조금 왔던 모양인지,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은 화분과 정원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과꽃을 보니,

나보다 먼저 일어난 잠자리 한 마리가 과꽃에 맺힌 빗물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리 무심히 지나치던 잠자리가 꽃에 앉아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 잠자리만큼은 특별하게 느끼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과 생각에서 벗어나 아무 이유도 없이 행복감을 찾아준 잠자리에게 감사했다.


그러고는 '아차! 잠자리가 날아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자'라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가지고 나와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잠자리는 날아가 버리고,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며, 

사진을 찍으려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자신을 생각하니 

이런 저런 고상한 생각들은 잠시였고 

다시 금세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다는 부끄러움에 볼이 빨개졌다.


그렇게 잠자리님의 강림 덕분에 추억의 사진 한 장이 곁에 있게 되었다.




사라진 들꽃, 野花





잎이 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들꽃...

그러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 해가 지나고, 다시 봄은 왔지만, 넌 자취를 감추웠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존재만이 사는 공간이 있다면,

내가 널 그곳에 보내지 않으리라.




Wild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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