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종이에 남겨 놓은 생각들

 


 

#1. 종이에 담은 하루


요즘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애매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많이 바쁘기도 했고, 많이 정신 없기도 해서, 어떠한 생각이란 것을 갖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저 피곤해서 쉬고싶고, 어떤 의욕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음 속이 공허하고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빈 종이를 놓고 어떤 것을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은 하루였고, 그것을 채워나가 만족감이 드는 하루였다.

 

 

 



#2. Cafe


처음 이 카페에 온 것은 늦은 밤 닫혀 있을 카페 들 중 열려있을 카페를 찾아 온 것이었다. 늦은 밤이라고하기가 어울릴 10시에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하여 커피와 카페를 무척 좋아하는 스스럼 없는 친구와 함께 칼디9에 들렸다. 처음 이 카페에서 느낀 것은 고급지다. 고풍스럽다. 는 느낌... 약간은 추운 날씨에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오르고, 인상적인 긴 테이블하나와 중세유럽의 성의 천장에 걸려 있을 듯한 거대한 등이 테이블 위에 있던 곳, 높은 천장은 답답함을 없에 주어 기분이 좋았다. 친구와 함께 늘 주고 받던 대화를 하던 중에 카페지기님과도 대화가 시작되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마음에 서로의 관심사기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커피, 아이템, 필기구 등 공감이 형성되어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특히 혼자 있고 싶을 때에 찾아오게 되는 곳이 되었다.

 

 

 

 



#3. 카페는 커피 맛...


상당히 많은 카페를 들려온 것 같다. 프랜차이즈, 그리고 개인 상점이 이르기까지 벌써 카페에 대한 포스팅도 120여개가 되어가고 또 늘 새로운 카페를 찾아나서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카페를 찾아 새로운 커피 맛을 느끼는 것이 나와 어울리는 취향이다. 그래서 한번 들렸던 곳은 자주 못게가 되지만, 그런 곳 중에서도 다시 들릴 수밖에 없는 카페는 분명 존재한다. 밀로커피로스터스, 테일러커피, 미소레, 쌍리, 1380 같은 기분 좋은 카페는 다시금 발걸음을 찾게 해준다. 이러한 카페는 내가 즐기는 주관적인 커피 맛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카페를 찾게되는 기준은 가장 중요한 것이 분명 커피의 맛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변하게 된 곳 중에 하나가 오늘 들린 카페이다. 언젠가부터 간간히 들리게 되는 카페인데,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날, 커피가 생각나 무심고 다시 들리게 되었고, 그 뒤로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때, 삶에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때 들리게 되었다. 분명 커피 맛 자체로는 이곳 보다 괜찮은 카페는 주변에 몇곳이 있지만, 그런 곳 보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다. 맛이 아니라고 해도, 카페에서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단골이 주는 편안함


오늘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저녁시간에 친구를 만날까 했지만, 시간이 애매하게 되어 만나질 못하였고, 피곤해서 몸 상태도 좋지 못하고, 그래서 집 안에서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전에 미리 내려 놓은 Drip Coffee가 냉장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굳이 카페가지 않고, 집에 있는 근사한 테이블에 앉아 Coffee를 즐기면 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더 많았는데, 갑자기 그냥 답답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는 단골이 된 카페 칼디9은 사실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가기에 귀찮기도 한데 - 금요일 저녁이라 가는 도중에 차도 많이 막히더라 - 막상 카페에 도착하니 기분이 풀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를 기억해 주고, 웃으며 맞하여 정겨운 커피 한 잔을 내려 주는 마음이 고맙다. 그러하기에 나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내가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5. 서비스와 선물


이 카페에 들려서는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함께든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커피를 한 잔 더 주시고, 돈을 받지 않고 원두를 주시기도 하고, 오늘은 조각케이크 한 조각을 주신다. 이렇게 받는 것을 흔히 서비스라고 하는데, 낯선 곳에서 받는 것들은 서비스라고 생각이 들지만, 자주 들리는 곳에서 서비스를 받게되니 서비스라는 것 보다는 선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비스와 선물, 받은 것은 같은 것인데 다른 단어를 사용하니 그것을 대한 기분이 다르다. 생각치 않게 받은 케이크 선물이 감사하다. 카페 또한 돈을 주고 받는 채권 채무 관계, 계약관계이지만 나 또한 돈이 아닌 선물로 그 값을 대신하고 싶다. 돈이 아닌 마음이 오가는 시간은 척박한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지만, 분명 인본주의 사회에는 어울리다는 말을 하고 싶다.

 

 

 

 


#6. 나를 찾는 시간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생각을하고, 종이에 끄적이고 있다. 카페에서 하는 가장 단순하며 기본적인 시간을 갖고 있다. 그것이 별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진정이 되며, 현실과 타인과의 만남이 지속적인 사회 속에 살며 느끼던 복합함 그리고 견딘다는 말이 어울리는 삶을 잊게 해준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돈을 벌고 타인에게 잘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고, 자신의 마음 속에 생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너무 가엾지 않은가.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종이 위에 머리 속을 맴도는 의미 없는 생각들을 끄적이고 있다. 그저 생각만하고 사라져 버릴 것들을 써나가고 있다. 사라져 버릴 뻔한 나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으로 비워진 공간은 다시 책을 읽어 채운다.

 

 

 

 


#7. 사는 것은 우습다.


사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이란 존재로 타인이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영혼육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이루어 살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습은 숨겨야 한다. 경제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투지 않기 위하여, 그저 주변에 존재하는 짜증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의미가 있지만 결국 모두 살기 위하여, 자신을 오히려 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속의 자신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자신만의 생이 있고 가치관과 살아가는 법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주의에 단 하나도 없다. 그것을 알아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인데, 자신이 자신을 외면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은 존재치 않은 것이 된다.


 



산다는 것은 참 쉽고 간단하다. 태어나고 죽는 것 사이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두려움인 죽음 앞에 아둥바둥 견디며 사는 것 일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이루어지는 것은 없을 수 있다. 가장 두려운 죽음을 초월하여도 현실은 죽음보다 가혹한 환경을 주고 있다. 단지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만이 답이 될 수도 있다. 하루 하루가 다시 반복되는 고통뿐이라면 삶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하지만 죽음이란 거대한 공포 앞에 하루라는 시간을 유예하며 살다보면 신기하게도 가혹한 환경이 조금씩 변하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생명은 언제라도 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하루만 더 살고 버려도 된다. 내일 하루를 사는 것 단지 그것이다.

 

  

 

 


#8. 하루만 더 살자


두려움을 버려라.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죽음을 버려라.


무얼 두려워하는가

아무 염려 말아라.


죽음을 버리고

하루를 살아라.


하루를 살다

다시 잠에 들기 위해

잠시 눈을 감을 때에


영원히 눈을 감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 못드는 자여

잠들지 못해도

그대로 가치가 있다.

 

 

 

 

 


我找我

 


터널 속 흔들림





지금 가고 있는 인생의 길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生이란 주어짐 속에...

 

무엇에 이끌려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는 반복 속에...

 

어느 하나 맞는 것이 있는지 모르고 살 수밖에 없다.

 

 

 

단 한번의 탄생과 단 한번의 죽음 사이에

 

수많은 행복과 고통, 슬픔을 오가는 복잡한 존재로

 

불려지는 명패하나 달고 인생의 길을 걷다가

 

마지막 빛 한 번 보고 후회치 않으면 다행이리...

 

 

 

猶豫



느리게 보여도 절망하지 말라


성공회의 예수상


"내가 계획한 일들은 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전이 실현되는 시간은 천천히, 꾸준히, 확실하게 다가온다. 

 느리게 보여도 절망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이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인내하라!

 단 하루도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합 2:3,LB)


태어나고, 아이답게 즐기고, 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지고, 성장할 곳이 없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까.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테두리 속에 또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을까.

모두 같은 틀에 갇혀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길과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는 그 열정의 순간에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열정이 타고 타다 점점 희망의 땔감이 모자라질 때에, 다시 일상의 테두리로 돌아간다.

그후 테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어두운 밤, 길을 모르는 산 속에서 마을을 찾기위해 방황하지만, 

계속 같은 곳을 맴돌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과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아마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있다. 

아직 자신도 모르는 땔감은 남아 있다. 아직 우리는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은 지구의 작은 산이 아니라 태양일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뜨거운 존재일 것이다.

인내하자!

계획한 일들이 비록 일어나지 않을 지라도.

자신의 삶을 천천히, 꾸준히, 확실히 만들어간다면, 느림과 정체는 문제되지 않으리라.

오늘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은 비록 어제 걸었던 길이지만, 

어제와는 다른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새벽에 생각하다 - 천양희




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백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 맴돌다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광대함은 고작 세제곱미터 안의 작은 울음이었으니, 

생각와 이상의 끝은 넓으며 좁은 상상 속의 종이 안의 물음이었구나.



나는 나 자신이 만든 감옥의 창을 통해 

별을 찾을 수 있었다


- 단 두 줄



구속을 푸는 자유의 열쇠는 나의 호주머니 안에 고이 간직 되지만, 아직 나는 열쇠를 어느 호주머니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네.





땅에 낡은 잎 뿌리며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을 쓸어버리는

바람처럼 살았다

그것으로 잘 살았다, 말할 뻔했다


- 바람의 이름으로



천상병 시인은 편안히 하늘로 돌아갔지만, 천양희 시인은 돌아갈뻔하였구나.

땅에 떨어지는 생 잃은 이파리는 바람에 날려 또 어딘가로 날아가 하나의 분진이 될 것이다.



거미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미줄을 뽑지 않는 것처럼

우리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소유로 살다 가는 것이다


- 무소유



자신이 현재 가장 떠올리는 것이 구속이고 이를 버리는 것이 해탈이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사랑을 떠올리면 사랑을 버리고, 즐거움을 떠올리면 즐거움을 버려야 한다. 나를 구속하는 물건에 마음을 버려 무소유가 된다지만, 어차피 삶을 떠날 때에 의미 없이 버려질 것들 잠시 함께 친구로 남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마음은 色이 없어 슬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色

비가 내리면 비의 色

정처 없이 떠도는 시간의 방랑 속에 

눈을 감고 상상 하는 色의 여행은

어느 개성에 걸려 물이 들까


하아~ 나는 오늘도 나를 찾아 고민한다 



왜 그럴까

평생 바라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구별 없는 하늘에 물었습니다

구별되지 않는 것은 쓴맛의 깊이를 모른다는 것이지

빗방울 하나가 내 이마에

대답처럼 떨어졌습니다


- 잘 구별되지 않는 일들



오늘은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하늘 하늘 내리는 눈을 보니 마음의 따뜻함이 포근해 진다.

하지만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눈을 대하는 자세도 눈을 맞이하는 마음도 전과 같이 순수하진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황홀함이 줄며 난 하늘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월이 변한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조금은 더 여린 마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해도 하는 것이 후회밖에 없어

나는 아직도 아픈 신발을 신고

어디로 가고 있나

그래도 하늘은 아무것도 슬프지 않고

바람은 아무것도 안타깝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춤추는 자와 춤을 구별하겠는가


- 후회는 한여름 낮의 꿈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벗어날 수 없는 후회의 고리에 맴돈다.

이제는 일탈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다잡을 때도 되었는데, 무엇이 두려워 스스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까




언제부터였나

시간의 넝쿨이 나의 담을 넘고 있다

누군가가 되지 못해 누구나가 되어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이지

돌아보니 허물이 허울만큼 클 때도 있었다

놓았거나 놓친 만큼 큰 공백이 있을까


- 놓았거나 놓쳤거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보니, 꽤나 살았는데, 남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죽음은 두렵지만, 하루 하루 죽음으로 향해 간다.

하지만 지겹게 반복되는 삶에 일탈은 어쩜 無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루의 삶이 유예되며 왜 내게 긴 숙제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답을 적고 싶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말들하고요

나는 가끔 뒤돌아보았어요

그늘을 생각하면

나는 미리미리 서늘해져선

한나절이라도 내가 먼저

봄이 되고 싶었어요


- 그늘과 함께 한나절 



봄은 떠나가고 다가온다. 

민들레 활주로 날아 올라, 태양의 바람타고 잎을 떨궈, 눈 썰매 타고 대지에 내리면

또 한번의 봄은 다가온다.



산은 저렇게 말이 없고

산속에 누운 너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마치 한가지로

너는 몇 년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것은 너의 영원한 레퍼토리

그러나 그렇지만

바람 불고 비는 또 내려

얼어붙은 내가 새롭게 놀라지만

오늘은 전화할 데가 없어

하루가 너무 길다

그 많던 오늘은

어디로 다 가버린 것일까


산다는 게 이렇게

미안할 때가 있다니


- 마찬가지



산다는 게 미안하면 미안하면 미안하면, 다시 바람을 타고 비를 내려 흘러 버리자




지상에는 나라는 아픈 신발이

아직도 걸어가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실패의 힘으로

그 힘으로


- 실패의 힘



하루에도 몇번씩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경험하는 현대인에게

당신과 같은 동지가 하나 있다고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이겨내자 말해주고 싶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어머니는

지는 꽃의 마음으로

어린것들의 앞날을 염려하셨다


- 오후가 길었다



나와 당신의 生에 축복을 기원하며...



무소유, 법정


법정스님의 무소유


오래전에 읽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꺼내 읽었다. 25주년 기념 개정판이라 쓰여 있는데, 초판 발행이 1976년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0년에 인쇄된 것이다. 18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책은 표지의 끝 부분만 조금 구겨졌을 뿐 예전 그대로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말씀하셨거늘, 나는 오랜 시간 이 책을 소유하며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아이러니에 빠졌다. 




어쩌면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에 더욱 공감이 간 것은 아니었나 한다.


▲ 법정스님 (法頂, 1932.10.8 ~ 2010.3.11)




"아침 우물가에 가면 성급한 낙엽들이 흥건히 누워 있다. 가지 끝에 서성거리는 안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져 버린 것인가. 밤 숲을 스쳐가는 소나기 소리를 잠결에 자주 듣는다."


- 아침에 우물가에 가면 언제나 먼저 차지하는 손님이 있다. 아침 햇살, 별, 안개, 습기, 낙엽... 언제나 존재했던 것을이 게으른 인간의 발걸음 보다 먼저 세상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있던 것이 자연이다.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은 인공으로 변한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나쁜가. 어차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단지 인공이 늘어나며 멀어지는 소나기 소리 같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무 아래서 그저 서성거리기만해도,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만 내다보아도 내 핏줄에는 맑디 맑은 수액이 돈다."


- 어려서는 아니 그렇게 아이는 아니고 청소년 때에는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움직이지 못하고 늘 한자리에서 바람이 불어도, 눈 비가 와도,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이 존재하며, 단지 푸른 하늘로만 향해가고 싶었다. 교정 주변에 유독 많던 커다란 플라타너스는 마치 나의 꿈이 스며든 이상향 같았다. 내 핏줄이 맑디 맑은 수액은 될 수 없을지라도, 지친 몸이 자연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면 수액을 타고 푸른 잎의 한 구석을 여행해 보고 싶다.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다. 독서가 취미라는 학생, 그건 정말 우습다."


-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여 일상과 같이 살아야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나, 바쁜 현대사회에 일상적으로 반복하며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먹고 싸는 현실에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은 거대한 할애인양 시간을 쪼개야하고, 책 한권을 읽으면 큰 일을 한 것인양 느껴진다. 지구는 늘 같은 속도로 돌고있지만, 성인으로 살아가기에 느껴지는 체감의 시간은 왜이리 가속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무소유' 한 권을 오늘은 읽지 않았는가!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게절인 모양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 주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 나는 가을을 싫어한다. 힘 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생의 종착점으로 나를 안내하고, 점차 차가워지는 공기는 내 마음 또한 차가운 거울이 되어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대하게 된다. 지겹게도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속에 1년이라는 굴레를 돌며 다시 죽음의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호수는 누군가가 던지지도 않은 돌이 날아든 듯 요동친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나에게도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설레이는 계절이 되고 싶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찮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 지금 현재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 그것을 버려라. 생각 속에 집착이 있고 마음 속에 구속이 있다. 얽매이는 것이 없이 놓을 줄 아는 것 그것이 해탈의 첫걸음이 아닐까?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우리는 끌려가는 짐승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야야 할 인간이다."


- 하늘에 태양이 있고 달이 있듯이, 이승에 천국과 지옥이 있듯이, 인성 속에 착함과 악함이 있듯이, 음양오행의 하나 처럼 세상이 양과 음이 있다면,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똑간은 하루를 보내도 하루는 즐겁고, 다른 하루는 힘들다. 어제 마신 술은 달지만, 오늘 마신 술은 쓰다. 주변에서 주는 상황과 그것에 영향을 받은 마음이 상호작용하여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마음을 변하게 한다. 알고는 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살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에는 미천하다.




"산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담듬는 물결이다."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며 도가 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숲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노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굵고 튼튼한 가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처음에는 눈의 무게를 구부러짐이 없이 지탱하고 있었지만, 점차 무거워지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반면 이보다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일 때마다 자연스레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를 본 노자는 깊이 깨달았다. "저 나뭇가지처럼 형태를 구부러뜨림으로써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로구나!" 




"인간의 일상 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스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학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한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 어찌 어찌 살다보니 나이가 들고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 움직이다보니, 내가 나를 살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하루 24시간의 회전으로 지구가 돌 듯,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하루를 반복한다.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기에도 지쳤다. 지금은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뜬 구름을 헤엄치기라도 하듯, 지금 바로 지금의 나를 만나고 있을 뿐이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둑이 다녀간 것이다. 남들이 보고 탐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그 과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듯 홀가분한 기분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 남이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뽐내는 허영심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일까. 나에게도 많은 물건이 지금 현재 내 옆에 놓여있다. 우스게 소리로 사람들이 '있다가 없는 것이 돈이다.'라 말이 있는데, 돈이 있다가 없는게 아니라 돈에 대한 마음의 집착이 있다가도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살아 남기 위하여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생은 사회적 제도의 배우가 아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것을 왜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다."


- 사소함 속에 감동을 얻는 것은 마음에 큰 여유가 있을때 가능한 것 같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여유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 또한 마음가짐에 달린 것은 아닌가 한다. 여유 또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즐기는 것. 주변에 사소한 수많은 감사함을 배워 마치 생활의 일부가 된 듯 느껴야한다.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 즉 망므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 미원하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이나 모든 것이 생각해보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변에서 주는 영향으로 인하여 자극이 되고 불완전한 심상이 되기는 하나, 결국 받아 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다. 잔 물결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잔잔해 진다. 언제나 물 아래는 그대로 고여 있다.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그렌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경험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 보면 대부분 하잘것없는 소음이다. 사람이 해야할 말이란 꼭 필요한 말이거나 '참말'이어야 할 텐데 불필요한 말과 거짓말이 태반인 것을 보면 우울하다. 시시한 말을 하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빛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것 같아 말끝이 늘 허전해진다."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된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하는 말이라고 했다."


"말씨는 곧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또한 그 말씨에 의해서 인품을 닦아갈 수도 있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주고받는 말은 우리들의 인격 형성에 꽤 큰 몫을 차지한다.

꽃가지를 스쳐오는 바람결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말만 써도 다 못하고 죽을 우리인데."

 

- 사회성을 갖은 동물로 말의 위대함 소중함을 느낀다. 말을 잘 하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쉴 새 없이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에 저렇게 말도 잘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대화가 끝나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너무 많은 말을 듣게 되어, 머리가 나쁜 나는 과부하가 걸려 모두 잊어버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를 애석해야 하는 것인지, 작은 그릇에 넘치게 물을 붙는 자에게 그만 부어 달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광의 상관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새봄의 흙 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다. 

거름을 묻으려고 흙을 파다가 문득 살아남은 자임을 의식한다. 나는 아직 묻히지 않고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나는 법이거든, 꽃에서 향기가 저절로 번져 나오듯.

그 꽃은 누굴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속의 새들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별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기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 속에 피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 사람들은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이렇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타인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하고 흠이 많은 미완성의 존재로, 나 보다 못난 것이 없는 타인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 같다. 타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미흡함을 완성시키는 시간이 보람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기준을 잡고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 흔들리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타는 향기가 나에게도 절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이란 말의 근원이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모습일 거다."


- 내 영혼은 보잘 것 없다. 수억명의 숨쉬는 사람들 속에 극히 평범한 하나, 특출날 것이 없고 속세의 일상에 익숙한 영을 잃은 육의 존재이다. 하지만 안다. 누구다 같지는 않다는 것은, 누군가와도 다른 개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 오늘 나의 하루는 스님의 말씀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가치에 대한 큰 형성을 배웠다.



 


 


계절은 언제나 돌고 돌아


▲ 해지는 시간, 제주 용눈이 오름에서




- 매미의 코스모스 -


                           - Paul Yoon

 

가을의 밤,

떨어지던 마른 잎사귀에 눈을 잃어

보지 못했던 아니 보지 않았던

이별의 데생, 그렇게

 

겨울의 새벽,

얼어가던 심장의 눈물에 마음을 잃어

보내지 못했던 아니 보내지 않았던

그리움의 족쇄, 어느덧

 

봄의 아침,

두근두근 그윽한 향기에 마음을 열어

잊고 싶었던 차마 잊지 못했던

사랑의 굴레, 그리고

 

여름의 낮,

화려한 꽃 잎에 눈을 열어

보기 싫었던 그래 보고 싶었던

추억의 유화, 이제는

 

어설픈 성충 놀이

건조한 껍질 벗어 투명한 날개 들어

보지 못했던 아직 보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 하늘에 연주하리라!

 

미증유의 참사 속

동백꽃 만개한 작은 섬 그늘 삼아

잊지 못했던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욕망의 샘물, 바다에 흘려보내리라!


- 2010年 7月 23日



1년이란 시간을 계산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겹게 순환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반복을 견디다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생각하는 존재의 마지막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가을이 되면 生命의 기운이 사그라든다. 푸르던 잎은 마지막에 붉게 타오르다 소멸한다.

겨울이 오면 새로운 生命을 위해 깊게 웅크려 忍苦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음을 설레이는 봄이와 여름에는 푸르름이 충만하다.


또 다시 가을이 되면, 또 다시 겨울이 오면, 그리고 봄이 되고, 여름이다.

그렇게 시간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데던 매미는 번데기로 忍苦의 시간을 보내 마침내 하늘을 난다.


마치 질서정연한 우주의 코스모스를 담은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를 이해하기에 나의 정신은 너무 가냘프고 내의 육체는 너무 하찮다.


Cosmos in Season



 

해가 떠서 그냥 존재하지


 서대문형무소 옆 밴치

 

삶은 주어진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존재한다는 것...

단지 그것이다. 이유는 없다.

 

힘들다.

누구도 힘들다.

누구도 아파한다.

 

존재한다는 것...

왜 그런건지, 이유는 없다.

 

텅빈 벤치에 나뭇잎으로 햇빛을 가려 본들...

그늘은 태양이 존재함으로 주어진 것.

 

빛을 막고 막아도 사이로 비치는 빛은...

해가 뜨는 한 존재한다.

 

그냥 해가 뜨니... 있는 것이다.

没有 理由

 Just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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