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법정


법정스님의 무소유


오래전에 읽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꺼내 읽었다. 25주년 기념 개정판이라 쓰여 있는데, 초판 발행이 1976년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0년에 인쇄된 것이다. 18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책은 표지의 끝 부분만 조금 구겨졌을 뿐 예전 그대로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말씀하셨거늘, 나는 오랜 시간 이 책을 소유하며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아이러니에 빠졌다. 




어쩌면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에 더욱 공감이 간 것은 아니었나 한다.


▲ 법정스님 (法頂, 1932.10.8 ~ 2010.3.11)




"아침 우물가에 가면 성급한 낙엽들이 흥건히 누워 있다. 가지 끝에 서성거리는 안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져 버린 것인가. 밤 숲을 스쳐가는 소나기 소리를 잠결에 자주 듣는다."


- 아침에 우물가에 가면 언제나 먼저 차지하는 손님이 있다. 아침 햇살, 별, 안개, 습기, 낙엽... 언제나 존재했던 것을이 게으른 인간의 발걸음 보다 먼저 세상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있던 것이 자연이다.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은 인공으로 변한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나쁜가. 어차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단지 인공이 늘어나며 멀어지는 소나기 소리 같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무 아래서 그저 서성거리기만해도,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만 내다보아도 내 핏줄에는 맑디 맑은 수액이 돈다."


- 어려서는 아니 그렇게 아이는 아니고 청소년 때에는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움직이지 못하고 늘 한자리에서 바람이 불어도, 눈 비가 와도,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이 존재하며, 단지 푸른 하늘로만 향해가고 싶었다. 교정 주변에 유독 많던 커다란 플라타너스는 마치 나의 꿈이 스며든 이상향 같았다. 내 핏줄이 맑디 맑은 수액은 될 수 없을지라도, 지친 몸이 자연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면 수액을 타고 푸른 잎의 한 구석을 여행해 보고 싶다.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다. 독서가 취미라는 학생, 그건 정말 우습다."


-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여 일상과 같이 살아야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나, 바쁜 현대사회에 일상적으로 반복하며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먹고 싸는 현실에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은 거대한 할애인양 시간을 쪼개야하고, 책 한권을 읽으면 큰 일을 한 것인양 느껴진다. 지구는 늘 같은 속도로 돌고있지만, 성인으로 살아가기에 느껴지는 체감의 시간은 왜이리 가속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무소유' 한 권을 오늘은 읽지 않았는가!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게절인 모양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 주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 나는 가을을 싫어한다. 힘 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생의 종착점으로 나를 안내하고, 점차 차가워지는 공기는 내 마음 또한 차가운 거울이 되어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대하게 된다. 지겹게도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속에 1년이라는 굴레를 돌며 다시 죽음의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호수는 누군가가 던지지도 않은 돌이 날아든 듯 요동친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나에게도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설레이는 계절이 되고 싶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찮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 지금 현재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 그것을 버려라. 생각 속에 집착이 있고 마음 속에 구속이 있다. 얽매이는 것이 없이 놓을 줄 아는 것 그것이 해탈의 첫걸음이 아닐까?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우리는 끌려가는 짐승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야야 할 인간이다."


- 하늘에 태양이 있고 달이 있듯이, 이승에 천국과 지옥이 있듯이, 인성 속에 착함과 악함이 있듯이, 음양오행의 하나 처럼 세상이 양과 음이 있다면,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똑간은 하루를 보내도 하루는 즐겁고, 다른 하루는 힘들다. 어제 마신 술은 달지만, 오늘 마신 술은 쓰다. 주변에서 주는 상황과 그것에 영향을 받은 마음이 상호작용하여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마음을 변하게 한다. 알고는 있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살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에는 미천하다.




"산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담듬는 물결이다."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며 도가 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숲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노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굵고 튼튼한 가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처음에는 눈의 무게를 구부러짐이 없이 지탱하고 있었지만, 점차 무거워지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반면 이보다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일 때마다 자연스레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를 본 노자는 깊이 깨달았다. "저 나뭇가지처럼 형태를 구부러뜨림으로써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로구나!" 




"인간의 일상 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스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학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한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 어찌 어찌 살다보니 나이가 들고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 움직이다보니, 내가 나를 살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하루 24시간의 회전으로 지구가 돌 듯,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하루를 반복한다.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기에도 지쳤다. 지금은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뜬 구름을 헤엄치기라도 하듯, 지금 바로 지금의 나를 만나고 있을 뿐이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둑이 다녀간 것이다. 남들이 보고 탐낼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그 과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듯 홀가분한 기분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 남이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뽐내는 허영심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일까. 나에게도 많은 물건이 지금 현재 내 옆에 놓여있다. 우스게 소리로 사람들이 '있다가 없는 것이 돈이다.'라 말이 있는데, 돈이 있다가 없는게 아니라 돈에 대한 마음의 집착이 있다가도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살아 남기 위하여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생은 사회적 제도의 배우가 아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것을 왜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다."


- 사소함 속에 감동을 얻는 것은 마음에 큰 여유가 있을때 가능한 것 같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여유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 또한 마음가짐에 달린 것은 아닌가 한다. 여유 또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즐기는 것. 주변에 사소한 수많은 감사함을 배워 마치 생활의 일부가 된 듯 느껴야한다.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 즉 망므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 미원하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이나 모든 것이 생각해보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변에서 주는 영향으로 인하여 자극이 되고 불완전한 심상이 되기는 하나, 결국 받아 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다. 잔 물결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잔잔해 진다. 언제나 물 아래는 그대로 고여 있다.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그렌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경험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 보면 대부분 하잘것없는 소음이다. 사람이 해야할 말이란 꼭 필요한 말이거나 '참말'이어야 할 텐데 불필요한 말과 거짓말이 태반인 것을 보면 우울하다. 시시한 말을 하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빛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것 같아 말끝이 늘 허전해진다."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된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하는 말이라고 했다."


"말씨는 곧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또한 그 말씨에 의해서 인품을 닦아갈 수도 있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주고받는 말은 우리들의 인격 형성에 꽤 큰 몫을 차지한다.

꽃가지를 스쳐오는 바람결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말만 써도 다 못하고 죽을 우리인데."

 

- 사회성을 갖은 동물로 말의 위대함 소중함을 느낀다. 말을 잘 하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쉴 새 없이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에 저렇게 말도 잘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대화가 끝나고 나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너무 많은 말을 듣게 되어, 머리가 나쁜 나는 과부하가 걸려 모두 잊어버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를 애석해야 하는 것인지, 작은 그릇에 넘치게 물을 붙는 자에게 그만 부어 달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광의 상관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새봄의 흙 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다. 

거름을 묻으려고 흙을 파다가 문득 살아남은 자임을 의식한다. 나는 아직 묻히지 않고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나는 법이거든, 꽃에서 향기가 저절로 번져 나오듯.

그 꽃은 누굴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속의 새들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별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기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 속에 피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 사람들은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이렇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타인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하고 흠이 많은 미완성의 존재로, 나 보다 못난 것이 없는 타인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 같다. 타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미흡함을 완성시키는 시간이 보람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기준을 잡고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 흔들리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타는 향기가 나에게도 절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이란 말의 근원이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모습일 거다."


- 내 영혼은 보잘 것 없다. 수억명의 숨쉬는 사람들 속에 극히 평범한 하나, 특출날 것이 없고 속세의 일상에 익숙한 영을 잃은 육의 존재이다. 하지만 안다. 누구다 같지는 않다는 것은, 누군가와도 다른 개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 오늘 나의 하루는 스님의 말씀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가치에 대한 큰 형성을 배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