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운주산 고산사




세종시 고산사


미세 먼지가 없이 맑은 날이 오랜만이기에 산에 가고 싶어 오랜만에 산으로 향하였다. 

높지 않은 산을 가고 싶어 어려서 갔던 산인 운주산에 갔다. 


고산사


운주산은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낮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460m정도로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천안 공주 조치원, 청주 일대를 볼 수 있다. 

에는 운주산성이 있고, 꼭대기에는 '백제인의 얼'이라는 탑이 있는 곳이다. 백제인의 얼이란 탑이 있듯 운주산은 백제와 연관이 많은 곳이다.


백제 운주산 고산사 일주문


운주산성은 백제군이 나당연합군과 싸우던 곳이다. 또한 백제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주류성이 전의 일대라는 학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운주산 초입에 있는 고산사(高山寺)에도 백제와 관련되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종루


입구에 가장 먼저보이는 종루의 이름은 백제루(百濟樓)이다. 종루부터 백제를 기리는 모습이 느껴진다. 


백제루


백제루 안에 있는 범종은 백제삼천범종이라 한다. 백제삼천범종은 백제의 의자대왕과 백제 부흥군의 혼령을 위로하고 극락완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된 범종이다.


백제루 옆 모습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한 뒤, 백제 의자대왕은 왕비와 왕자를 비롯한 일만이천 명의 유민과 함께 당나라 장안으로 끌려갔다. 의자대왕은 나라를 잃은 분노와 슬픔 때문에 중국 낙양에서 병사하였고, 당나라 조정은 북망산에서 장사를 지내 줬으나 지금 왕릉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제인들은 주류성에 모여 나라를 되찾기 위한 부흥전쟁을 벌여 3년 여의 오랜 시간 동안 투쟁하였으나 내분과 오랜 전쟁으로 패퇴하고 말았다.


백제삼천범종


그로부터 1,3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타국만리에서 쓸쓸히 승하한 의자대왕과, 주류성에서 백제를 재건하려다 끝난 백제 부흥군의 명복을 빌고 극랑왕생을 기원하는 '백제삼천범종'을 조성하여 아미타 부처에게 시납한 것이라고 한다.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


백제루 아래를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가면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비명에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원찰(願刹)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백제극락보전


법당의 현판도 '백제극락보전'이라 되어 있다. 극란전에서는 의자왕과 백제 부흥군, 원병으로 백촌강 전투에 참전한 왜군의 위패도 한편에서 찾을 수 있다. 고산사는 1966년에 창건된 사찰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운주산이 백제의 부흥군이 최후를 맞았다는 주류성 주변이라는 학설에서 이렇게 백제를 기리는 사찰이 생겨난 것이다.



주류성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가 서기 660년 7월 18일에 신라(新羅)·당(唐)의 연합군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백제사람들의 부흥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점차 흑치상지(黑齒常之)와 복신(福信)이 웅거한 임존성(任存城)과 도침(道琛)이 이끄는 주류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세력이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크게 이겼으며, 이러한 기세로 부흥군은 200여성을 회복하였다. 웅진성 공격 실패와 옹산성(甕山城)에서의 패배로 그 기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에 전념하고 일본에 있던 왕자 풍(豊)이 돌아와(662년 5월)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세력의 지휘부 내에 분란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데에 이른다. 더욱이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倭)가 보낸 병사 2만 7천명이 백강(白江)에서 궤멸되고 부여풍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백제의 부흥운동은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건지산성(乾芝山城), 충남 연기군 전의면의 당산성(唐山城), 전북 정읍시의 두승산성(豆升山城), 전북 부안군 상서면의 위금암산성(位金巖山城) 등에 비정하는 학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이 백강(白江)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한 땅이어서 농사지을 수도 없는 땅이다. 지금은 지켜내는 곳이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굶주리기 쉽다"고 적혀 있어 위치 추정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세종 운주산 고산사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고산길 92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88-3)

연락처 : 044-862-8093





天安 太祖山 公園

천안 태조산 공원




▲ 공원 연못


추운 날씨도 조금은 풀려 태조산 근처 카페 M 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잠깐 산책을 하려고 태조산 공원을 걸었다.

▲ 태조산공원

태조산 공원은 태조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태조산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군사를 일으키고, 천안에 관청을 만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태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산이 높지 않아 태조산 공원에서 빠르게 올라 정상의 정자까지 갔다 다시 공원 쪽으로 내려오면 1시간이면 충분한데, 주변에 높은 산이 없기에 천안의 풍경을 보기에는 참 좋은 산이다. 산이 높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운동 겸 산책 겸 태조산을 찾는다.

▲ 태조산 공원 연못

공원으로 들어가는 좌측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오리 몇 마리가 둥둥 떠다니는 곳이다. 봄이 지나면 공원 주변에 버들나무가 멋지게 보이는데, 약간은 쌀쌀한 초봄에 보니 앙상한 가지만이 있어 썰렁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태조산 공원의 조각들

▲ 공원의 조각

태조산 공원은 1987년에 조성하였으고, 공원의 이름은 태조산이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의 서쪽 기슭에서 군사들을 양병한 것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태조산 공원이다. 

▲ 쌍돼지조각

시민들의 심신단련을 위한 야영장·물썰매장·인조잔디축구장·체력단련시설·테니스장 등과 야외공연장·전망대·연못·산책로·등산로·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가족, 학교, 직장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더운 날 나무 아래에 가족 단위로 나와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조각공원

조각 공원은 연못 주변과 그 뒤 공간에 만들어져있는데, 띄엄 띄엄 개성있는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6천여㎡의 공간에 다양한 조각 작품 20여 점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 코브라 같은 양귀비를 바친 손


 
군사 장비의 모형 전시


▲ 공원 잔디밭

조각공원을 지나 좀더 태조산 안으로 들어가면 잔디밭에 오래된 군사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실외에 전시된 것 만큼은 아니지만 6.25때나 쓰던 것 같은 포와 탱크 전투기가 몇개 전시되어 있다. 

M548 탄약운반 장갑차

M110 8인치 자주포


천안인의 상

天安人의 像

공원의 맨 마지막에는 큰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천안인의 상'이다. 천안인의 상은 천안 출신 호국 영령과 천안을 빛낸 인물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인데, 1991년 12월 기존 남산 공원의 충혼탑에 모신 위패 319위와 1995년 5월 10일 시·군이 통합된 후 성거읍 천흥리의 충혼탑에 모신 위패 632위를 함께 옮겨 1995년 7월에 천안인의 상 각명비(刻銘碑)에 이름을 새기고 위패는 그 옆에 매장하였다. 상에 각명되는 대상자는 천안시 ‘천안인의 상 관리 조례’에 따르고 있다. 천안인의 국립 묘지령 제3조 안장 대상자, 국가 또는 지방 공무원 연금법 시행령 제2조 대상자, 국가 또는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자, 일반인으로서 천안을 빛내고 시장(市長) 이상의 장(長)이 된 자이다. 각명비에는 군인 960위, 경찰 51위, 군무원 10위, 학생 1위, 애국단 2위, 향토 예비군 1위, 공무원 1위, 기타 8위 등 전체 1,034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상 몸체의 전체 높이는 6m이고, 기둥은 4개로 높이 9m이며, 재질은 청동이다. 각명비는 높이 2.6m, 길이 7.4m이며, 재질은 대리석이다. 명칭비는 높이 1m, 길이 2m이며, 재질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다. 2002년 11월 30일에는 국가 보훈처로부터 현충 시설물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추념식을 거행하고 있기도 하다.

 
태조산 공원은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산 아래 있어 나들이로 가기에 좋다. 등산로 입구에 있기에 태조산을 오르며 가볍게 둘러 볼 수 있으나 여행으로 찾아갈 곳은 아니고, 시민들이 산책하러 나갈만 한 곳이다. ^^


천안 태조산 공원

전화번호 : 041-529-5117
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261 (유량동 22-1)






찬 바람 불던 날 들린

외암민속마을

Asan Oeam  Historic Village




▲ 초가집 위의 눈을 녹이는 태양


요즘은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라고 한다. 삼일은 한파 사일은 미세먼지라는 말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미세먼지로 흐린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같이 흐린 날씨를 보면 집 밖으로 나서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이다. 얼마만에 보는 상쾌한 하늘인지 먹다 체한 것이 풀리는 기분이다. 하늘의 푸르름이 내 몸을 밖으로 끌여 아침 부터 부지런해져 밖으로 나섰다. 


▲ 외암민속마을 안내도


가볍게 산책이라도 해볼 겸 근교의 걸을만한 곳을 찾다가 아산에 있는 외암 민속마을로 향하였다. 외암마을은 간간히 들리곤 했는데, 이번이 5번째 방문이다. 오랜 기간을 두고 들리다 보니 올때마다 조금씩 변해있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 들렸을 때에도 몇 곳은 공사 중이기도 하다. 처음 들렸을때가 2000년 초반인데 그때에 비해 꽤나 정리된 느낌이다. 분위기는 조금씩 안동의 하회마을을 닮아 간다. 안동 하회마을과 공주 한옥마을의 중간쯤 되는 분위기랄까? 그리고 봄, 여름, 겨울에 가보았으니 가을에는 아직 가보지 못하였다. 가장 좋은 날씨인 가을에는 들려보지 못하였네... 



외임마을은 충청 지방 고유의 전통 양식을 간직한 반가와 초가, 돌담, 정원이 보존되어 마을 자체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사람이 살고 있기에 더욱 보존 가치가 높지만 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가옥은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의 생활을 보호하면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외암민속관이 새로 만들어 졌다. 


▲ 외암마을의 겨울


외암마을은 본디 예안이씨 중심으로 구성 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를 두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막아주는 사이의 구룡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이 처음에는 넓은 농경지로 인해 자연발생적인듯 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예안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인물이 나타나자 점차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성하여 집성마을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 한옥


이 마을은 입구의 물(다리)를 건너면서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무가지와 같이 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작은 가지가 뻗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어 있는 것과 같은 자연형태와 같은 마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 외암 민속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듯한 마을이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 즉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주산이라 하는데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긴 선이 이어지는 축선에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집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동북쪽의 설화산 자락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완만하게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 작은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


마을 입구에는 밤나무를 깎아서 세운 남녀 장승과 열녀문이 있고, 곳곳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물레방아,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 


▲ 마을 입구의 장승


옛 마을이 잘 보존되어 있기에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마을 입구에는 지금까지 촬영된 드라마, 영화를 소개해 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영화 취화선, 클래식, 태극기휘날리며 촬영지


또한 마을 중요 민속자료 제 2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청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총 5.3㎞), 정원이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 주민이 거주하는 외암마을


또한 가옥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의 정원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다.


▲ 외암마을 이정표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을 외암리의 서쪽에 있는 역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곳 역말에는 조선초기부터 이미 시흥역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또다른 유래로는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정(李挺) 일가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예안이씨(禮安李氏)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재를 배출하여 반촌(班村)의 면모를 갖추고 반가(班家)의 가옥이 생겨났고, 그 뒤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1677~1727)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한자의 의미를 담으면 외딴 곳에 홀로 큰 바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마을을 둘러보면 바위가 보이지 않아 혼자만의 상상으로 남겨 두었다.


▲ 병풍처럼 산을 두르고 있는 민속마을


마을 남서쪽에는 설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 높지 않으나 급격하게 치솟은 산이 마치 마을의 방패인양 견고해 보인다. 온양 고을의 안산(案山)인 설화산은 금북정맥(錦北正脈)에 속하는 산악으로 광덕산에서 갈라진 지맥이다. 다섯 봉우리가 솟아서 오봉산이라고 한다. 


▲ 옛 마을과 산


이 설화산 반대편 자락에는 조선초기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한 고불(古佛)맹사성(孟思誠)선생이 살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고려말) 살림집으로 맹씨행당(孟氏杏壇)이 남아있다. 외암마을에서 천안 방면으로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맹씨행당의 옛집을 볼 수도 있다.


▲ 마을을 타고 천이 흐른다


현재 이 마을에는 예안이씨 사대부가의 기와집과 마을 주위의 논과 밭에 면한 곳에는 양반집에 소작을 붙여 살던 초가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접어드는 곳에 비교적 큰 개울을 건너는데 이 곳이 마을의 초입 표시가 된다. 개울물은 설화산과 광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서로 만나 흐르는 곳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물레방아간과 마을 장승이 마을길을 호위하듯 늠름하게 서 있다. 다리 아래 연자방아 앞의 반석(盤石)에는 이용찬(李用瓚)이 썼다는 ‘외암동천(巍岩洞天)’이, 옆으로는 기미년에 이백선(李伯善)이 썼다는 ‘동화수석(東華水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당시의 선비들의 생활을 엿보게 하는 곳으로 마을 초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 마을 초입과 왼쪽 연자방아가 있는 곳


그 옆으로 바위 암반에 둥그런 두 개의 구멍에는 가득 고인 개울물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이 구멍들은 지금의 현대식 다리가 세워지기 전, 나무다리를 이용한 시절에 냇물에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고정하기 위한 흔적이다. 이런 흔적을 보노라면 옛날의 마을 모습이 그리워지고 지금부터 전개될 마을 모습에 기대를 품게 된다.


▲ 참봉댁


▲ 송화댁


마을에는 조선시대 이정렬(李貞烈)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아산 외암리 참판댁(중요민속자료 195)을 비롯해 영암댁, 송화댁, 외암종가댁, 참봉댁 등의 반가와 그 주변의 초가집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데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영암댁은 회화나무와 수석이 어우러진 정원이 아름답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문화유산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 소나무 가득한 외암마을



외암 마을 안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마을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민속마을이 한옥마을로 되어 있지만 이곳은 초가집이 많아 색다르게 다가온다.


▲ 외암마을의 초가집


예전에는 한옥보다는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는데, 시대가 지나고 새로 지어진 한옥집이 더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오래된 양반집 한옥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 고즈넉한 한옥집


양반집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 특색 있는 정원이 당시 양반의 생활상과 풍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양반집


초가 역시 고풍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과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 돌담과 초가


특히 이 마을에는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 중류, 서민 가옥이 함께 남아 있어서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 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장에는 세월에 따라 이끼가 끼고 담쟁이 넝쿨이 자라,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정이 바뀌면서 더욱 멋스러워진다. 담장 안에 심어놓은 앵두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에서 아름답게 꽃이 필 무렵, 돌담장의 자연스럽고 중후한 석재와 담장 위에 얹힌 부드러운 꽃의 모습은 전통 한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초가와 장독


이 마을의 주요 볼거리인 돌담 너머로 집집마다 크고 작은 장독대의 부드러운 형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추녀 아래에는 집 안에서 옛날부터 사용하던 생활 도구들과 창고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해묵은 농기구들이 놓여 있는데, 뜰안의 경치와 어울려 금방이라도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외암마을은 우리 민족의 살아 숨 쉬는 생활박물관을 체험케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 초가지붕


맑고 높은 겨울 하늘을 보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외암마을을 걸었다. 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 느긋하게 마을을 즐기고 싶었으나, 발걸음은 빨라지고 서둘러 마을을 걸어 나온 것이 못네 아쉽다. 


▲ 겨울, 외암마을


날이 풀리는 날 다시 한번 마을에 들려 산책을 즐겨야겠다. ^^



외암민속마을


전화번호 : 041-541-0848

주소 :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9번길 13-2 (외암리 203)

관람 시간 : 매일 09:00 - 18:00하절기 / 매일 09:00 - 17:00동절기

입장료 : 어른 2,000원 / 어린이 1,600원

홈페이지 : 외암민속마을 oeam.co.kr



Paul Yoon's Daily


- 2018.02.02~04.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이 푸르다. 

얼마만에 보는 푸른 하늘 인가, 요즘 겨울 날씨는 삼한사미라고 한다. 삼일은 춥고 사일은 미세먼지라는 말이다. 일주일 내내 추위와 미세먼지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던 중에 이렇게 푸른 하늘을 보니 무거운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가기에 충분한 느낌이 든다.


▲ 밝은 하루


푸른 하늘에 현혹되어 일단 밖으로 나가 차에 음악을 틀고 운전을 해 근교의 한적한 곳을 찾아 갔다. 산책을 할겸 아산에 있는 외암민속마을에 갔다. 그런데 이런... 칼바람이 불어, 너무 추웠다는 ㅠ.ㅠ


▲ 외암민속마을 나들이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마시는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 진것인지 서글프다.


▲ 민속마을 산책


집에는 제라늄이 피었다. 요즘 계속 몽우리 있더니 기어이 꽃을 피웠다. ^^

제라늄은 이파리를 건들이면 냄새가 고약한데, 꽃이 자주피고 참 예쁜 식물이다.~~


▲ 제라늄


꽃이 핀 기념으로 거실의 구조를 바꾸어 봤다. 거실에서 책도 보고 노트북도 하려 테이블을 두개나 꺼내 놓았다.


▲ 집 정리 했어요~


테이블 하나는 창문에 붙여 밖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게 하고, 하나는 길게 놓아 거실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나름 깔끔하게 보여 책보기 좋은 구조가 되었다. ^^


▲ 아담한 거실


거실 구조를 바꾼 기념으로 독서 ㄱㄱ


▲ 주말 독서


책을 좋아하는 민핫도 함께 독서 모드로 돌입했다. ^^


▲ 독서 중이신 ^^


내가 요즘 읽은 책이, 람세스, 무소유, 간디 자서전,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이라, 이번 주는 머리를 풀어주려,

무려 무협지를 읽었다. 역시 무협소설 술술 읽어지는 것은 최고이다. ㅋ


▲ 무협소설


With Coffee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믹스커피이다. 

얼마 전에 아시는 분이 내게 "카페를 자주 다니고 커피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니, 믹스커피는 마셔도 맛이 없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거침없이 답했다. 


"믹스커피 만큼 맛있는게 없지요 ~^^;;"


아무리 커피를 많이 마셔도, 아직도 내게 하루의 첫 커피는 믹스커피이다.


▲ 군산에서 산 예쁜 컵에 담은 믹스커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커피도 좋아한다. 

그 중에서는 매일에서 나온 바리스타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에스프레소 라떼' 맛이 가장 맛있다. ^^

편의점에서 간간히 1+1으로 판매할때 냉장고에 채워두고, 오랜 시간 운전을 하거나, 여행을 갈때에 챙겨가곤하는 인스턴트 커피이다.


▲ 바리스타커피


이번 주말 카페에서 즐긴 커피는 라떼이다. 


매번 카페에 들릴때마다 주구장창 카푸치노만 마신다. 

전에 한 친구가 "전체적인 커피의 깊이는 내가 더 자부심이 있으나, 카푸치노 한 우물만 파는 자네에겐 카푸치노에 대해 논할 여지가 없군."이라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은 진정 맛있는 카푸치노를 찾는 기쁨을 만나기 어려워, 차라리 라떼를 즐긴다. 우유 폼의 부드러움에 타협하며 마시는 커피가 라떼이다.


▲ 카페라떼




With Food



사람은 먹는 동물인가?

요즘 내가 먹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정말 다양한 요리를 즐기다 보니, 평소에는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 미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는 일의 특성상으로 모임과 만남이 많아 외식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가 보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이 더 좋다.


▲ 집에서 만든 치킨


금요일 밤에는 집에서 나의 단짝 민핫이 냉장고의 닭가슴살을 소비하겠다고 남은 닭가슴살을 전부 튀겨 버렸다.

튀기면 다 맛있다나? ㅋㅋ


▲ 홈 후라이드 치킨


나름 바질가루도 넣고, 튀김 색도 예쁘게 나왔다. 원래도 치킨을 주문해 먹으면 뻑뻑살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닭가슴살 튀김이 꽤나 많이 좋았다. ^^ 아직은 치킨 튀김 수준이지만 곧 주문해 먹는 것보다 맛있게 나올 것을 예상해본다. ㅎㅎ


▲ 치킨튀김


금요일 밤 치킨에 맥주가 빠지면 실 없는 바늘이 아닐까?

얼른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치맥으로 불금을 보낸다.


▲ 불금 치맥


전에 한동안 라면을 엄청 많이 먹은 적이 있었다. 

라면에 진미채, 콩나물, 깻잎, 뽕나무잎, 숙주, 스팸, 고추잎 등 다양한 것을 넣어 먹어보며, 나름 인스턴트 라면을 끓이는 조예가 생겼다. ㅋㅋ

짜파게티도 꽤나 잘 끓인다. 면이 반쯤 익었을 때에 물을 반 정도 버리고, 스프 넣고 쎈 불에 쫄여가며 볶아버리면 상당히 맛있는 짜파게티가 된다. 거기에 계란후라이 살짝 올리면 금상첨화이다. ^^


▲ 짜파게티 & 계란프라이


간식으로 작은 마르게리따 피자를 사먹었는데, 

음~ 비쥬얼이 마르게리따라기 보다는 두꺼운 빵에 치즈 조금에 바질가루 뿌린 피자빵이다. ㅋㅋ

이거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ㅠ.ㅠ 

다음 주말에 한번 만들어볼까? 고민 중이라는...


▲ 마르게리따 피자


토요일 저녁은 쭈꾸미볶음으로 정했다.

얼마 전에 사무실 사람들과 들렸던 곳인데 맛이 괜찮아서 다시 들렸다.

숯불쭈꾸미볶음이 유명한 집인데, 개인적으로는 숯불 보다 일반 볶음이 더 맛있었다.

맵지는 않게 먹은 것 같은데, 이마에서는 나도 몰래 땀이 흐른다. ^^;


▲ 쭈꾸미볶음


맘스터치에서 버거도 먹었는데, 평소 자주 먹던 햄치즈휠렛버거와 사이버거가 아닌 리샐버거를 먹어보았다. 왠 리코타치즈 같은 것에 쌈에 들어가는 야채가 들어가서 개성이 있었다. ㅋㅋ


▲ 맘스터치, 리샐버거


버거와 함께 맥주도 한병 마셨는데, 서양의 요리 버거에 동양의 맥주인 칭따오를 함께 먹으니 기분이 묘하다. 중국 맥주는 역시 연변에서 마셨던 빙천맥주가 최고였는데, 오랜만에 차가운 빙천 마시고 싶다 ㅠ.ㅠ


▲ 칭따오 맥주


일요일 밤에도 차분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필라이트 맥주 한 잔 ^^


▲ 필라이트 맥주



With Photo



날이 좋아 오랜만에 바라본 푸른 하늘

마음의 눈이 내 자신이 아닌 공허한 하늘의 푸른 빛으로도 이렇게 충만한 것을

일상의 발걸음을 두고 좁은 몇 몇의 공간만에서 존재하며 

얼마나 편협한 시간을 보냈는가

태양 빛이 있어도 어두운 우주의 검은 색인 보이지 않는 푸르름에 갇힌 내게도 일탈의 무중력은 존재하리라.


▲ 겨울의 태양을 앙상한 가지가 가려주려 노력한다



▲ 옛집과 주인을 모를 자전거 한 대


▲ 눈이 온 한옥과 살아남은 식물


▲ 옛집의 변신, Cafe 시루 4294


▲ 실루엣에 숨은 새의 형상





▲ 영등포 타임스퀘어


여의도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핫트렉스에서 살 것이 있어서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갔다. 주말에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타임스퀘어 전체에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 많은 곳을 정말 싫어하는데, 한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정신이 없어진다. 


▲ 타임스퀘어 스타벅스


▲ 스타벅스를 이렇게 줄서서 마셔아하다니...


매장은 물론이고 마마스, 마호가니, 스타벅스 등 카페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한 긴 줄이 이어진다. 진짜 대박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카페가 있는 곳을 지나 교보문고에 있는 핫트렉스에 사려했던 것을 사러 들어갔는데... 헐~ 뭘 사러 왔는지 까먹었다. ㅠ.ㅠ 너무 많은 사람을 봐서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한참을 둘러보았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리가 나빠졌어~~ 요즘 너무 자주 깜박깜박한다.ㅠ.ㅠ  그래서 그냥 핫트렉스 구경만 하다가,  CD플레이어에 라디오, 블루투스 스피커가되는 브리츠 제품이 엔틱하니 CD도 돌아가고 라디오 듣기 좋을 것 같아 마음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으로 구매하는게 더 쌀 것 같아서 일단 그냥 나왔다. 


▲ 브리츠 BZ-T7800


집에와서 다른 사람들이 산 것 리뷰를 보니 음질이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닌데, 디자인이 괜찮아서 다들 만족한다고 한다~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 2개나 있고, 라디오도 따로 되어서, 굳이 필요는 없는데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 중이다. ㅋㅋ
결국 핫트렉스에서 아무것도 못사고, 주변 매장에서 다른거 뭐 살 것 없나 구경을 했다.


▲ MUJI, 무지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자주(JaJu) 같은 포멧의 일본 상점 무지도 둘러봤는데, 역시나 살게 없고 ㅠ.ㅠ 무지는 가격은 다른 곳보다 조끔 비싼데 살건 없단 말이지...



결국 목적한바를 잃고 하염없이 구경만 하다가... 돌아왔다는... ^^;; 문제는 뭘 사려고 했었는지 아직도 생각이 않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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