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oksugung Palace

with Film


석조전, Deoksugung Seokjojeon, 德壽宮石造殿


근대와 현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Deoksugung, 國立現代美術館 德壽宮館] 


미술관 창


처마 [eaves]


덕수궁 중화전 [Deoksugung Junghwajeon, 德壽宮 中和殿]


덕수궁 석어당 [Deoksugung Seokeodang, 德壽宮昔御堂]


덕수궁 등나무


덕수궁 즉조당 [Deoksugung Jeukjodang, 德壽宮 卽阼堂]


바람의 문


덕수궁 돌담길, 여름에, 2017年 


Nikon F3


德壽宮



달리고 싶다


갤러퍼 차의 작은 말


말은 달리고 싶다.

광활한 벌판과 야생의 자연 속에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자연은 인간 덕분에 미로가 되었다.

말 또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매매의 대상으로, 경주의 선수로, 전쟁의 도구로,


말이 달리고 싶다는 것을 인간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자동차의 조각으로 꾸며주지 않았는가

인간이 만든 엔진을 달고 마음껏 달려보라고...






추억의 붕어빵




시장 한켠에 고소한 붕어빵 냄새 바람을 타고 물결친다.

코가 먼저 눈이 다음에 붕어빵을 따라 추억이라는 시간으로 떠나간다.

따뜻한 붕어빵과 웃고, 즐기던 시간들,

이미 간식을 넘어 우리의 소중한 樂의 매개체가 되었다.




사슴 눈망울



사슴아, 너의 깊은 눈망울 속에는 가식이란 찾아볼 수가 없구나

단지 먹고, 뛰고, 자고 어느 본능에 맡겨 지금의 순간ㅇ르 보내고 있구나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많은 생각을 한단다.


사슴이라는 객체에 대해서도

너에 대한 보존을, 너에 대한 가치를, 너에 대한 이익을,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람들은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생각을 가지며 살아간단다.


물론 잠시 그러지 않을 때도 있어

바로 이 순간

너의 깊은 눈을 바로보고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단다.




비상을 꿈꾸며


인천 월미도 앞 바다에서



네 이름이 조나단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

아마도 네게는 이름이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게도 너만의 꿈은 있겠지?

대기권을 넘어 무한의 공간으로 날아갈 수 있는 꿈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주워진 특권이겠지?


내 마음까지 함께 가지고 

저 멀리 떠나가 주렴,

한낱 갈매기야, 


한낱 인간의 꿈을 꾸게 해다오.





대륙기차에서


2003年, 중국 베이징 서역에서 서안으로 가는 기차


여행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과 생각하지 못한 추억도 생겨난다. 중국여행을 하며 기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중국의 기차를 타본 것은 2003년 노동절 기간에 조선족자치주의 주도가 있는 연길에서 친구가 사는 길림시에 가기위해 잉워를 타본 것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중국의 기차는 '루완워'라는 4인실 침대칸과 '잉워'라는 6인 3층 침대가 나열되어 있는 종류의 침대칸이 있고, '잉쭤'라는 좀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칸이 있었다. 


처음 탄 기차는 잉워를 타고 8시간 정도를 달린 것인데, 밤에 기차를 타고 새벽에 내렸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기차를 다며, 한국에는 없는 침대칸 기차를 타는 것이 신기했다. 기차를 타니 그 칸을 담당하는 역무원이 와서 표를 달라고 한다. 왜 표를 달라고 하는지 모르고, 그냥 확인차원에서 달라고 하는가 보다 하며, 표를 주니, 표는 가져가고 금속으로된 표로 바꿔주었다. 나중에 내릴 때 알게 된 것인데, 오랜 시간을 가다보니, 자는 사람도 있고 해서 내리는 시간에 다시와 그 금속으로 된 것을 다시 가져다 주며 깨워주기도 하고, 다음 역이 내리는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런 점은 상당히 좋았다. 친구들끼리 수다도 떨며 잠이 들고 다음날 새벽에 길림에 도착하여 처음의 기차 여행을 마쳤다. 생소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탔던 기차는 여름에 연길에서 북경에 가는 기차를 타고 20시간 정도를 갔다. 그때에도 잉워를 타고 갔는데, 잠자기 전에 보았던, 옥수수 밭의 풍경이 자고 일어나도 똑같은 옥수수 밭이기에 도대체 얼마나 옥수수를 키우는 곳이 넓은지 의아해 했다. 거의 대부분 잉워를 타고 이동을 했던 것 같다. 기차 안에는 생각보다 외국인이 없었다. 외국인인 저에게 여행 중이냐며 말을 붙이는 사람도 있고, 기차 안의 중국사람과 함께 음식도 먹고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런데 북경의 서역에서 장안으로 가는 기차에서는 바로 옆 침대에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있었는데, 여자의 키가 너무 커서 침대 밖으로 하얀 발이 뛰어나온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하얀 발의 발바닥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인지 새까만 것이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크게 웃지는 못하고 작게 큭큭 거리던 것이 기억이 난다. 


북경의 서역은 2003년 서안에 갈 때와 2004년 낙양에 갈 때 두번 이용을 해보았는데, 북경역보다 세련되고 좋았다. 북경과 낙양은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8시간 정도는 간 것 같다. 중국의 기차를 탈 때마다 장기간을 움직이다보니, 기차에 타기 전에 먹을 것을 잔득 사서, 들어가곤 한다. 기차 안에서 음식 카트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잠시 멈추는 역의 플랫폼에 라면이나 밥과 도시락 같은 것을 팔고 있기는 한데, 플랫폼에서 파는 것은 멀리에 있으면, 기차가 출발해버릴까봐 조마조마 하며 빨리 달려가 음식을 사오기도 했다. 식사로는 라면과 도시락 그리고 미리 사가지고 온 버거를 먹거나 했다.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해도 하루 정도를 기차 안에 있으면, 상당히 지루하기는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빨리 시간이 지나간다. 한국에서는 3시간 정도만 기차를 타고 가도 너무 지루하고 시간이 왜 이리 가지 않는가 하며 답답한 마음도 많았는데, 중국에서 기차를 차며 내리기 5시간 정도가 되었을 때에 내릴 때가 다되었다며, 짐을 정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었던 때도 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타본 것은 계림과 장안을 이동할 때 걸린 28시간 이었다. 밤 11시에 기차를 타고 하루를 기차에서 보낸 후 다음날 새벽 1시에 기차에서 내렸다. 하도 오래 가다보니, 밤에 잘때에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왼쪽으로 달리던 것이, 아침에 눈을 뜨니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자고 일어나니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며 혼자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렇게 놀라며 갔던 계림에서는 새벽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와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쓸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색다른 경험이었기에 즐거움이 더한 시간이었다. 


그런 즐거움은 기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덕분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쑤저우에서 청도로 가는 기차에서는 귀여운 꼬마아이와 친해져 함께 놀기도 하고, 한 번은 역무원과 친해져 함께 사진도 찍고 그랬다. 그 역무원은 처음에 중국말을 못하는 줄알고 있었는데, 통로를 청소하며 오던 역무원이 책을 읽고 있던 제 근처까지 오기에 쓰레기가 없다고 말을 하니, 10시간 정도 중국말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중국말을 해서인지, "뭐야~ 중국말을 할 줄 알잖아~" 하며 꿍얼거리며 가기도 했다. 그 역무원은 다른 칸에도 한국인이 있다며, 갑자기 그 한국분을 소개시켜주어 내려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잉워를 타고 다니며 있던 일들이었는데, 잉워 말고도 루완워와 잉쭤도 모두 타보았다. 루완워는 상당히 아늑하고 좋은 4인실 침대칸이다. 누을 수 있는 공간도 넓은 편이고, 조용하고 더 깨끗해서 좋았다. 그리고 다른 독특한 기차로는 항주에서 상해로 가는 기차는 약간 빠른 의자칸 기차였는데, 기차가 2층이었다. 2층 버스는 타본 적이 있는데, 2층 기차는 처음 타보아서 신기했다. 중국의 가장 발전된 도시인 상하이로 가는 기차라 그런지 상당히 깨끗한 기차였다. 


가장 타기 힘튼 기차는 바로 잉쭤라는 자리이다. 잉쭤는 한국의 예전 통일호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습다. 약간은 딱딱한 의자칸인데, 그런 기차칸을 타고 톈진에서 연길까지 18시간 정도를 타고 갔다. 잉쭤를 탄 것은 다른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타게 되긴 했지만, 그때의 동행과 나중에 창가쪽 자리를 바꿔가며 앉아가기로 하고 탔었다. 심양까지가면 자리를 바꾸기로 했는데, 끝까지 바꿔주지 않는 친한 형님을 보며 구박을 했다. 잉쭤의 자리는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말고도 입석처럼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 수가 많다. 의자 밑에 누워서 가는 사람도 있고, 내 다리 바로 앞에 쪼그려 앉은 사람도 있어서 다리를 10시간 정도 펴지도 못하고 갔다. 화장실을 쓰는 사람도 많아 한참을 기다려 들어가기도 했다. 연길로 가는 기차이다보니, 조선족들이 기차안에 있어 말이 편하게 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두산을 여행하려고 기차에 탄 한국인 여자 두 분도 같은 칸에 있어서 이야기도 하고 했다.


이런 저런 중국의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가장 생각나는 것은 북한의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었다. 톈진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는 분이 뭐라고 말을 건다. 중국어도 아니고 무언가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못 알아들었다. 중국에 있은 지 오래 되어서 한국말과 비슷했던, 할아버지의 말을 못 알아 들었던 것이었다. 다시 잘 들어보니 한국말이기는 한데, 좀 억양이 이상했다.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해주고, 기차를 탔더니, 그 할아버지도 같은 기차칸에 계셨다. 역에서 대화를 한번 해서인지, 말을 먼저 붙여오셨다.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명태를 팔기위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북한과 중국은 생각보다 자유롭게 왕래를 하는 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찰라에 할아버지께서 내게 물어본다. 한국에서는 '아버지'를 뭐라고 부르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한국에서도 '아버지'라고 합니다." 라고 답을 했더니 또 물어보신다. 그럼 한국에서는 '친구'를 뭐라 부르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한국에서도 친구를 '친구'라고 부릅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옆에 앉아있는 중국사람에게 중국말로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쓰는 말과 한국에서 쓰는 말이 같다며 중국인에게 말을 하며, 호탕하게 웃으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어떤 의미의 눈물인지, 어떤 의미의 웃음이었는지, 알듯 모르듯 묘한 감정이 제게도 찾아왔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니, 한국의 분단 상황이 이데올로기적인 이념을 벗어나, 정치와 권력인 소수를 위한 분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분단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남한과 북한의 대립관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전에도 통일은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말을 쓰며 수 천년을 함께 보내다가 잠시 헤어진 지 반백년이 조금 넘은 우리 민족에게 이별은 긴 시간만은 아닌 것 같다. 기차를 타고 간도 지역으로 향하며, 언젠가 삶이 끝나기 전에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이 대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기약했다. 


과연 그런 날은 올 수 있을까?




Seoul

Cheonggyecheon










AGFA PHOTO 200 vista plus



서울


청계천


빌딩 숲의 생명길이자, 과제의 길을 걷다.



 清溪川 



기다리고 있겠다고


▲ 나미나라 포스트, 남이섬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서있었다고,

단지 한 통의 편지를 받기 위하여 또 서있겠다고,

하지만 받고 나면, 어쩔거야?

이미 마음은 남의 나라에 가있는 걸...


變心




, 사람


▲ 중국 길림성 길림시 북산공원에서


지금도 쓰는 표현 중에 하나이겠지만,

나라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에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많아지는 모습을 "벌집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의 생활을 벌에 비교하여 안쓰러워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그런 생각 자체를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지금 벌집 안에서 사진에 있는 벌집을 보며 상기하는 표현일 뿐이다.

콘크리트에 구멍 뽕뽕 뚫어는 있지만, 그 속은 따뜻하고, 경치도 좋다.

층간 다툼도 있고, 관리단의 불화도 있어 싫다.

꿀도 있고, 침도 있는 것이구나.

그런데 벌들아!

이제는 지구를 점령한 것이 인간이니, 벌집이란 말은 인간에게 주어야 하지 않겠니?

거꾸로 벌집을 "사람 아파트 같다." 라고 표현할게.




순간의 하루

 

 

해가 지고 창을 닫아 모든 하루가 끝이라 생각했지만,

상념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란 시간은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창을 닫고 끝에 있을 것인가

창을 열고 시작에 있을 것인가


사람은

무한의 선택을 하며 지금도 흐르고 있는 순간의 하루를 보내야 한다.


단지 잠 못드는 밤,


▲ 동인천 홍예문


텅 빈 방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아 어두운 공기를 느끼며 멀뚱멀뚱

보이지 않는 천장만을 바라본다.

 

잠이 오지 않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왜 이렇게 잠 못 드는 것인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로 머리 속은 잠식되어 간다.

 

그러다 문듯 이것이 왜 잘못된 상황이라 여기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은 나 하나뿐...

 

잠이 든 사람은 잠이든 채로,

새벽 공기를 마시는 사람은 차가움을 아는채로,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나와 같은 동지로,

그렇게 사는 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라고 걱정하며

단지 잠 못 드는 자신을 탓하고 있던 것인지...

 

왜 걱정하는 것인지...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그냥 자연스럽게 가는대로 가면 될 것을...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되레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걸로 됐다.

나의 새벽은...


失眠症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 군포시 지금은 사라진 공장 주변에서


해는 제자리에서 여지없이 뜨고 지어, 세상에 한해라는 기준을 만들어 사람들을 인도한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든 시간의 연속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아 세상을 여행한다.

숨 한번 내쉬고, 길을 나선다.

 

인공에 의한 길과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의 연속에서 소중한 가치의 존재 하나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는 서로의 상대성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단지 한번의 걸음으로도 의미 없는 거대한 만남의 순간이 사라져 간다.

 

인생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 한 사람의 영혼이 되어 주변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곁을 지나친다. 모르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멀어진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멈추어진 길 위에서 지나치는 한 사람을 바라본다.

그는 소중하다. 비록 그저 스쳐지나가 알 수 없는 존재이지만 잠시의 순간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길을 걷는다. 해가 뜨고 해가 져도 어딘가로 떠난다.

모두가 대지 속으로 돌아갈 때에 다시 만나 스쳐지나 갔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다.


Moment


내려갈 수 있을까?

 


 

높다고 생각되지만 높지 않은 2층, 사다리 같은 계단 9개 앞에 멈추어있다.

과연 이곳을 내려가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하나일까?

하지만 앞을 막는 철조물은 아직 한걸음을 들지 못하게 한다.

아니. 스스로 두려움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I can, But i can't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계단


▲ 서울 한남동 골목길


황금빛 조명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진열장의 심플하고 모던한 명품 상점 사잇길로 위태로워 보이는 가파른 회색빛 계단이 지난다.

그리고 그 뒤로 낡은 건물에 오래된 간판을 달은 슈퍼도 아닌 작은 수퍼 하나가 보인다.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문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여 세계 속의 선구자로서 발을 딛기 시작하려 하는 미래적인 화려함과 빠른 변화 속에 아직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적인 부분들이 반영되어 비추는 듯한 풍경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계단을 내리며 과거를 추억하고, 계단을 오르며 미래의 환상에 빠져 버릴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환율과 증권의 치수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감성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과연 나에 마음의 지금은 이 계단의 아래 즈음 인지... 위 즈음 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의 시선이 위치하는 곳에서 잠시 내려가 머물고 싶은 추억을 그려본다.


回忆

 

해가 떠서 그냥 존재하지


 서대문형무소 옆 밴치

 

삶은 주어진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존재한다는 것...

단지 그것이다. 이유는 없다.

 

힘들다.

누구도 힘들다.

누구도 아파한다.

 

존재한다는 것...

왜 그런건지, 이유는 없다.

 

텅빈 벤치에 나뭇잎으로 햇빛을 가려 본들...

그늘은 태양이 존재함으로 주어진 것.

 

빛을 막고 막아도 사이로 비치는 빛은...

해가 뜨는 한 존재한다.

 

그냥 해가 뜨니... 있는 것이다.

没有 理由

 Just living

 

 

것의 소중함


▲ 작은 마을의 작은 공원에 물들었던 단풍

 

단풍을 보면 언제나 생각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만주족으로 중국의 길림성 길림시에서 태어났다. 길림시는 길림성에 있는 도시 중에 장춘시와 함께 큰 도시로 대표되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며 과거에 고대 국가로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이 등장하며 배웠을 나라 중에 부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이다. 그리고 외국의 강 이름 중에서 자주 듣던 송화강이 바로 서울에 한강이 흐르듯, 길림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곳이다. 아련히 떠오르는 옛 부여를 기억하며 그 위치가 상당히 북쪽에 있고, 추운 곳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추운 곳에서 살아가던 친구가 한국의 가을을 보며, 너무 아름다워 가을이란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곳은 가을이 너무 짧고, 추운 장소이기에 단풍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짧다고 한다. 한국의 가을에는 붉고 노랗게 물들은 나뭇잎들이 마치 거대한 그림처럼 보여, 가을의 하루 하루는 언제나 그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길가에 떨어진 진한 색의 잎은 언제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어딘가를 갈 때에도 일부러 단풍이 들은 길로 다녀 멀리 걸어가곤 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언제나 찾아오는 가을을 너무 무심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이 되면 찾아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의 상징인 꽃, 비, 단풍, 눈.

 

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지구상에서 많은 수이기는 하겠지만, 몇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는 것을 느껴본다. 이런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는 북반구의 일부 나라 중에 한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로서 이미 삶은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흔한 꽃이 주변에 보이나요? 자주 비가 내리나요? 널려있는 단풍을 바라보나요? 귀찮은 눈을 밟아보나요?

 

잠시 잊었던 소중한 존재의 가치에 감동을 느껴보세요.

 

또 다른 하루의 시선이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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