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 적벽강





부안 적벽강


부안에서 마직막으로 들린 곳이 적벽강이었다. 수성당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진 적벽강으로 향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상당히 어두워진 상태여서 으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적벽강은 수성당과 가까워서인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이 있는 듯, 무속행위를 하지 말라는 푯말이 보였고, 바닷가에는 바다에 제사를 지우며 띄우는 배도 보였다. 


어두운 시간에 들린 적벽강


적벽강은 변산반도의 유명한 관광지인 채석강에서 북쪽으로 약 1㎞의 백사장을 따라가면 이르게 된다. 백사장 뒤편의 죽막마을을 경계로 채석강과 나뉘어진다. 죽막마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를 '적벽강'이라 한다. 



이름의 유래는 송(宋)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중국 황강현(黃岡縣)의 성(城)밖에 있으며, 소동파가 이 곳을 찾아가 전후적벽부(前後赤壁賦)를 지었음)과 자연경관의 빼어난 풍치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1월 17일 명승 제13호로 지정된 적벽강은, 변산해변의 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적벽강은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어 맑은 물에 붉은색이 영롱하며, 특히 석양 무렵 햇빛을 받아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후박나무 군락 앞 해안의 암반층에 형성된 석물상 가운데 어느 것은 여인의 유방 같고, 또 어느 것은 토끼 모양을 하고 있는 등 바위 하나하나가 만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라 부르는 50㎡ 면적의 동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으로 용두를 돌아가면 검붉은 암벽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는 검은색·갈색 등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어 절경을 이룬다.


수성당에서 본 적벽강


적벽강의 몽돌해변



적벽강


주소 :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252-20

전화번호 : 063-584-0951









변산반도 수성당





수성당 앞 바다


변산반도 채석강을 본 후에 일몰을 보기 위하여 수성당과 적벽강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채석강은 워낙 유명한 장소이다 보니 사전 지식이 있던 곳이었지만, 수성당은 어떠한 곳인지 모르고 해지는 바다의 풍경을 보기 위하여 갔던 곳이다.



수성당에 도착하니 여행지 분위기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 무속인이 제사를 지내고 있어, 그제서야 왜 '당'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수성당은 '신당'으로 오래된 건축물로서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방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이다.


수성당


전설에 의하면, 이 수성당에서 칠산(七山)바다를 수호하는 수성할머니라는 해신(海神)을 받들어 모셨는데, 이 여신은 키가 매우 커서 굽나무깨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를 하여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준다고 한다. 또 수성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각도에 딸을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수심(水深)을 재어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수성당을 구낭사(九娘祠)라고도 한다. 



신당 인근 주민들이나 어부들은 해신과 그의 딸 8자매신을 정성껏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정초에 격포(格浦)마을에서는 삼색 실과와 술·과일·포(脯) 등을 차리고 궂은 일이 없고 생기복덕한 제주(祭主)를 뽑아 정성껏 제사지낸다. 제일(祭日)은 정월 초사흗날인데, 근동 어민들이 모두 모여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린다. 당 안에 무신도(巫神圖)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타 없어졌다. 



상량(上樑)에 ‘崇禎紀元後四甲子朝鮮純祖四年, 1804 六月’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1850년(철종 원년) 이전부터 신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1864년(고종 원년)에 3차로 중수한 것으로 보이며, 1940년에 4차로 중수하였다. 옛 원형은 찾아볼 수 없고, 지금의 신당은 1973년에 중건한 것이다. 



이 수성당 주변은 성스러운 곳으로 함부로 접근이 금지되었으며, 절벽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시누대가 무성하다. 1960년대 초까지 수성할머니의 영정이 있었는데, 외부인의 출입이 많아지면서 없어져버렸다고 한다.


수성당 올라가는 길


수성당 옆 절벽


일몰을 보기 위해 수성당을 향하였지만, 미세먼지가 가득한 바다에서는 일몰을 볼 수가 없었다. 수성당의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멋졌으나 여행지라기에는 좀 거리가 있다.


해 지던 서해바다




부안 수성당


주소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길 54 

전화번호 : 063-580-4713










변산반도 채석강





변산반도 채석강


변산반도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가 채석강일 것이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절벽에 기괴하게 모인 퇴적암이 풍경을 압도하는 곳이다. 내게도 변산반도의 여행은 채석강이란 곳을 보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서해 바다와 퇴적암층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200m)일대의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기암괴석들과 수천수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강자가 붙어 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닭이봉 한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절경이다. 이곳의 지질은 선캠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있고,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만권의 책이 쌓인 듯한 채석강


위에서 말했듯이 채석강의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시선 이태백이 달빛 아름다운 밤, 뱃놀이를 하며 술을 즐기다 강물에 비추어진 달을 잡으러 푸른 물에 뛰어들어 그 삶을 마감하였다는 장소에서 기인하는 이름이다. 중국의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 모르지만 격포해수욕장 인근 닭이봉의 한쪽을 장식하는 채석강의 모습은 수많은 책이 높다랗게 쌓여 있는 듯한 특이한 퇴적암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격포항 방면으로 자리하는 해식동굴은 그 안쪽에서 바다와 기암, 하늘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채석강 탐방은 물때를 확인하고 찾아야 멋진 경관을 자세히 즐길 수 있다. 만조 시기의 채석강은 단순한 해안의 부드러운 모습뿐이다.


해가 지던 채석강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1월 17일 명승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12만 7372㎡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부안 채석강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퇴적암층


채석강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바다와 바위


퇴적암이 빚어내는 절경은 부산 태종대와 해남 우항리 등 우리나라 해안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이 곳 해안의 채석강은 이름 만큼이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수천만년 동안 바닷물에 깎이고 남은 바위절벽 면을 이루고 있는 자갈, 모래 등의 켜(층리)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채석강의 절벽과 해수면 부근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져 얇은 책을 연상케 하는 반면, 위는 층리가 다소 두껍게 나타나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얇은 역암층이 관찰된다. 반면 퇴적암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은 큰 바위들이 끼어있는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으며,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라는 게 전승수 교수(전남대 지질학)의 분석이다.



한편 격포항 방파제에는 채석강 절벽의 사암 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다른 퇴적암 절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는 입체적인 구조로 봐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 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거북이를 닮았던 바위


신기했던 바닥



해지던 바다





부안 채석강 (변산반도)


전화번호 : 063-582-7808

주소 :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301-1

홈페이지 : http://www.ibuan.co.kr/tour01/index.htm







전북 부안

내소사, 來蘇寺




봄이 오는 내소사


3월 중순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봄이 아닌 늦겨울 같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있었지만 내소사에 피어나려는 산수유 나무를 보니 나도 모른 사이에 봄은 주변을 찾아왔다.


내소사 입구


부안에 들려 예전부터 들어본 유명한 사찰인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로 향하며 보이는 산새가 그림 같았다. 하지만 사찰 앞에 도착하자 번잡해 보이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로 어지럽다. 유명한 사찰이다보니 절을 관광오는 사람이 많아 자연스레 관광지 분위기이다. 마음의 안정을 갖을 사찰의 입구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내소사로 향하는 삼문(三門)



식당가 거리가 끝나는 곳이 사찰의 입구인 일주문이 나온다. 관광지의 분위기를 단숨에 사찰의 분위기로 바꾸는 것이 사찰의 일주문이 아닌가 한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산문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一柱門)


사찰의 입구에는 사찰을 담아준 산의 명칭이 함께 담겨있다. 내소사는 부안 내소사라 부르며 능가산 내소사라고도 많이 부른다. 일주문의 모양은 사찰마다 다른데 내소사에는 그림이 그려있지 않고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불교에서는 용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내소사의 일주문 대웅전 등에 있다.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묘사된다. 용이 불교에 받아들여 질 때의 본래의 모습대로,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부처의 주변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찰 입구에 있는 무지개다리 아래쪽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아, 개천을 타고 들어오는 사악한 무리가 청정한 공간인 절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절의 일주문 천장에 조각된 용머리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법당 안의 기둥이나 벽에 그려진 용은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여 법당을 신성한 공간으로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용이다. 또 불상 장식인 닫집에 조각된 용은 불법 수호의 의미와 함께, 왕의 최고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부처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일주문의 여의주를 문 용 두마리


이에 비해 법당 정면의 기둥 위에 조각된 용은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저 언덕, 즉 피안 또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탈것을 주로 배에 비유하였다. 그 배는 주로 용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를 반야용선이라고 한다. 즉 반야용선은 번뇌에 쌓인 이 세계에서 극락세계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인 셈이다. 법당은 바로 부처와 함께 극락세계로 가는 배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법당 앞쪽의 기둥머리나 계단의 소맷돌에 용머리를 조각하여 법당이 곧 반야용선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즉 용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매표소가 있고, 유명한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두번째 문인 사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


사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서 사찰 경내 출입문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내소사의 사천완문은 17평의 목조 한와 팔작지붕으로 1986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신축하였다. 편액은 일중 김충현 거사의 글씨이고 주련글귀는 해안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오도송은선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시를 이르는 말. 게송(偈頌)의 하나이다. 게송이란 불교의 가르침을 함축하여 표현하는 운문체의 짧은 시구를 말하는데, 본래 게와 송은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이날은 목조 사천왕상 조성 불사 중이기에 내소사의 사천왕을 만자니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천왕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내소사가 보인다. 그리고 세번째 문이자 마지막 문인 봉래루가 나온다.


봉래루(蓬萊樓)


내소사 봉래루는 조선 태종 12년 (1414)에 건립한 전면 5칸, 측면 3칸, 2층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취하게 하였다. 이들 초석의 배치는 전면 5칸 12.23m로 각 기둥 사이가 215-244-305-244-215cm로 중앙의 칸으로 갈수록 넒어지고 있다. 측면은 외열 기둥 사이가 3칸으로 6.20m이며 각 기둥 사이는 215-190-215cm의 간격으로되어 있지만 내부는 2칸으로 각 칸이 310cm를 유지하고 있다.


봉래루 뒷편


봉래루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1821년에 기록된 “내소사 만세루 상량문”, 1823년에 걸어 놓은 “내소사 만세루 중건기”현판과 특히 최남선의 <심춘순례>의 “변산의 사대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전나무 자욱한 축동으로 들어서서 그것이 다 하는 곳에 “만세루”라는 높은 다락이 앞에 나섬은 이미 내소사에 다다른 것이다 일변에는 봉래루라는 현판을 달았으니....." 이상의 문헌들을 통해 1823년에 “만세루”란 이름으로 중건하였으며 이 후 “봉래루”란 명칭의 현판을 달았고. 1926년 이후에야 비로소 “봉래루”란 명칭으로 정착되어진 듯하다.


봉래루 옆면


속설에는 “봉래루는 실상사의 누각으로 1415년에 세웠다가 옮겨왔다”고 하였으나 6.25전까지 분명 사찰이 존재하였는데 하필이면 다른 사찰의 누각을 내소사로 옮겨올 수도 없거니와 분명 문헌에서 증명하는 바이니 재론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봉래루에 오르면 정지상의 시와 그 주위로 정지상의 원운을 차운한 시가 여러 수 있으며 중창기, 송덕기.시주질 등 36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봉래루 앞 연등


내소사 누각 배치도



관음봉 아래 내소사



봉래루 뒤로 들어가면 병풍같은 관음봉이 보이고, 내소사의 전경이 보인다. 관음봉의 높이는 433m로 높지는 않다. 전라북도 부안군의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있다. 내소사에서 관음봉을 지나 직소폭포와 저수지를 거쳐 월명암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국립공원의 한 축을 이룬다. 바위를 깎아세운 듯이 내소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일주문에서 시작해서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 3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


관음봉과 대웅전  [觀音峰] 


관음봉 서쪽으로는 망포대(望浦臺)와 신선암(神仙岩) 줄기가, 동쪽은 옥녀봉 줄기가 곰소만을 에워싸고 뻗어 있다. 주변 옥녀봉(432m)과 선계폭포, 선계암, 굴바위는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선계폭포가 있는 우반계곡은 허균이 한때 은거하여 홍길동전을 집필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관음봉 바로 아래 능선에 올라서면 남으로 곰소만이 호수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멀리 작은 해협 건너 고창군 일대와 선운산도립공원의 산들이 펼쳐진다.


조사전과 관음봉


내소사는 임진왜란때 절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조선인조11년(1633) 청민선사가 대웅보전을 비롯 설선당 등을 중건 중수 하였다. 그 후 광무 6년(1902)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원력으로 증축불사가 있었으며, 전등회 조실이신 해안 선사의 참선지도로 인하여 수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정진하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현재의 내소사를 있게한 우암 혜산 선사가 1983년 내소사에 주석하면서 다시 한 번 쇠락해진 전각 및 요사를 정비, 복원하여 오늘날의 내소사를 이루게 되었다.



내소사 느티나무



내소사 전경


내소사로 들어가니 정면으로 큰 느티나무가 눈에 띈다. 약 천년을 살았고 나무 둘레가 8m 정도가 된다.


내소사 느티나무


거대한 느티나무가 마치 절을 수호하는 장군처럼 앞에 버티고 있다.


소원을 담은 기와



내소사의 범종



느티나무 양쪽 옆으로는 종이 있다. 왼편에는 고려 동종이 있는 보현각이 있고, 오른편에는 범종각이 있다.


보종각


보종각는 보물 제 277호인 고려동종을 달아 놓은 종각을 말한다. 이 건물은 현 위치에 있기까지 몇곳을 거쳤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본래 이 건물은 1880년경 태인에 세워졌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부안군 상서면 김상기씨의 누각으로 사용하다가 다시 만화동의 구병서씨가 사용하였는데, 1965년 내소사 주지 원경스님께서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전에는 법당 앞마당 서남향에 설치되었는데 현 내소사 회주 우암혜산선사가 주지 재임시 현위치로 이건(移建) 하였다. 보종각에 있는 고려동종은 원래 내변산에 있는 청림사에서 고려 고종 9년(1222)에 만든 것이다.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종으로, 높이는 1.03m, 직경은 67m, 무게 420kg 이다. 종을 매 다는 고리에 용을 새겼고, 종 가운데에 세 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조물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 협시상은 서 있는 모습이다. 종의 윗 부분와 아랫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문양을 새겼으며, 해바라기처럼 뾰족한 끝을 가진 연꽃 무늬가 종을 때리는 자리이다.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 드러나있는 종이다.


범종각


범종각은 13평의 팔작 한와지붕으로 1995년 당시 주지였던 철산스님이 대범종, 대법고, 목어, 운판등 4물(四物)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무설당



보현각 뒤편으로는 무설당이 있다. 


무설당


무설당 (無說堂)은 정면 7칸, 측면4칸의 45평의 팔작지붕 한와지붕에 ㄱ자형의 목조 건축물로 해안선사의 “능가산의 유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허화상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년 전까지 당시 서편에 지금의 동승당(東僧堂, 說禪堂)과 동일한 건물이 있었는데 동민의 부주의로 인해 실화소각을 당할 때에 사적까지 소실되었는데....." 이후 잡초가 무성하여 옛자취를 찾을 수 없고 1990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옛 고지에 현 무설당을 복원 건립하여 주지실과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내소사 삼층석탑과 대웅보전



내소사의 중앙에는 대웅전과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내소사 3층석탑은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3층석탑은 2중기단으로서 화강암질로 되어있습니다. 하층기단은 전고 3.46m, 폭 1.43m이며 1장의 석재에 지대석, 면석, 갑석을 각출하였고, 면석에 우주와 장주를 각하였다. 이갑석의 상면은 상대중석 받침쪽의 높은 경사를 이루고 중석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상대중석의 경우도 모두 1매의 석재로서 면석에 우주와 면석중앙에 장주가 하나씩 모각되었습니다. 2단의 탑신받침 각출과 하단받침을 말각하였다. 이 갑석의 아래에 갑석부연을 각출하였습니다. 탑신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의 탑신석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체감되었다. 옥개석은 각층이 1배의 석재로 되어 있고 4단의 받침이 있다. 3층 옥개석 상면의 노반이 있는데 이 노반의 윗부분은 상대갑석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구형의 석재 2개가 올려져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三層石塔)



삼층석탑 바로 뒤에 있는 건물이 내소사의 중심인 대웅전이다.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관음조가 그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 (大雄殿)


대웅보전은 높게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40尺×35尺의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집이다. 기둥간살은 넓은 편이며 중앙칸은 더넓으며, 기둥은 두껍고 낮아 평활하며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 안기둥에는 민흘림으로 안정감이 있다.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 출목 내5 출목으로 내외출목간의 차이가 심한편이어서,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내부공간은 높은 천장을 가지게 된다. 외부에서 공포는 살미끝이 심한 앙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의 조각이 새겨져 매우 장식적이고, 내부의 공포 역시 살미끝을 앙서형으로 처리했고 중도리 열주쪽은 빗반자를 사면으로 돌리고 그것을 다시 조각하였다. 정면창호는 2짝-4짝-2짝 구성으로 보다 더 안정감이 있으며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전설속의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수백년의 세월속에 채색은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지만 만져보면 감촉이 참 좋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조선후기 유명한 서화가)가 쓴 글씨다.


대웅전 현판


내부의 후불벽은 측면의 기둥열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내부공간을 확보하고 후불벽을 형성하였고 후불벽 뒷부분에는 유명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색의 天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불단의 기둥을 뒤로 물려 넓은 내부공간을 이루며 상부의 포작들은 연꽃봉오리모양으로 조각되어있고, 천장에도 가득히 장식을 했다. 안팎모두 장식으로 충만해 있지만 적절히 절제되고 통일되어 있어서 번잡한 인상은 주지는 않는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꽃살은 나뭇결이 그대로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답다.


대웅보전의 꽃문살


대웅보전의 절묘한 꽃잎 문살은 꽃 한잎 한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그 예술성은 다른 곳에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여섯 잎 보상화를 조각하며 기묘하게 맞추어 나간 연속문양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법당 안에서 문을 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정갈하게 비쳐든다.



설선당



대웅전의 오른쪽에는 설선당이 있다.


설선당(說禪堂)


설선당은 내소사의 대중 요사로서 승려들의 수학 정진과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건물은 보기드문 □자형을 하고 있으며, 지면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건물의 일부를 2층으로 구성하였다.


설선당


안마당을 중심으로 넓은 대방과 승방, 부엌 등이 배치되고, 2층의 고루(高樓: 높은 다락집)는 각종 곡물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벽면에 여러 개의 환기창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지붕선이 뒤쪽에 보이는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이 건물은 1640년(인조 18)에 내소사를 중건할 때 같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지장전과 지옥벽화, 명부10왕



대웅전의 왼편에는 지장전이 있다.


내소사 지장전 [地藏殿]


지장전은 21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지장보살과 명부10왕을 봉안한 전각으로 2010년에 건립하였다. 지장전(地藏殿)은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이라고 일컫는다.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인데 주존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 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 하며, 또한 염라대왕 한 분만 아니라 지옥에 있어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전의 둘레에는 제10지옥의 벽화가 그려있다. 요즘 인기있던 영화인 '신과 함께'에서 나온 지옥의 대왕의 모티브가 된 불교의 지옥왕을 볼 수 있다. 지옥과 이를 관장하는 대왕은 경전마다 다르다고 한다.


진광대왕


진광대왕은 죽은 자가 7일째 방문하는 명부의 판관으로, 생전의 선행을 사경대 (邪鏡臺) 로 조사하며 다른 왕에게 보내 심판과 벌을 받게 한다. 직접 벌을 주지는 않고 주심판관으로 생사나 수명을 관장한다.


초강대왕


초강대왕은 죽은 자가 14일째에 방문하는 명부의 판관으로 부정직한 중매, 사기 판매, 사람이나 동물을 해쳐 불구로 만든 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송제대왕


송제대왕은 죽은 자가 21 일째 방문하는 판관으로, 부정한 관리로서 속이거나 이익을 챙기고 배신,사람을 죽였거나 ,중상모략으로 남을 곤경에 빠트리게한 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오관대왕


오관대왕은 죽은 자가 28일째 방문하는 판관으로, 남의 것을 착취하고 베풀지 않았거나, 병든 환자를 속이고, 사기 판매 , 저울 눈금을 속인 상인 , 신 에 대한 불경, 사원에서의 도둑질을 한 자를 벌을 주는 판관이다.


염라대


염라대왕은 죽은 자가 35일째 방문하는 판관으로 악법을 따르고 ,함부로 살생을 하고,도둑질, 음행을 일삼고, 살인 , 도를 구하는 자를 죽인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평등대왕


평등 대왕은 죽은 자가 100일째 방문하는 판관으로 부모나 윗사람에게 효성이 부족한 자, 도둑질,사람을 죽인 자, 사음을 한 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태산대왕


태산대왕은 죽은 자가 49일째 방문하는 판관으로 무덤을 파 헤쳐서 사람의 살을 먹거나 의료 목적에 이용, 인신매매로 사람을 팔고 사는 행위를 한 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도시대왕


도시대왕은 죽은자가 1년이 지난 뒤 방문하는 판관으로 방화범, 낙태시술자, 외설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글, 작품을 감상하고 읽은 사람, 이유 없이 자살을 한 자를 심판하고 벌을 주는 판관이다.


오도전륜대왕


오도전륜대왕은 죽은 이의 죄를 심판하는 저승시왕 중 10번 째 왕이다. 죽은 이의 영혼을 다스리고 생전의 행동을 심판하여 상벌을 주는 지옥의 열번째 왕이다. 죽은 넋이 3년째 되는 날에 오도전륜대왕에게 열 번째이자 마지막 심판을 받고 생전의 행위에 따라 다시 태어날 곳이 결정된다.




진화사와 삼성각



지장전 뒤편으로는 진화사와 삼성각이 있다.


진화사 (眞華舍)


진화사는 정면 3칸, 측면2칸의 17평 목조 팔작 한와건물로서 그 사료는 찾을 수 없으나 1988년 옛터에 우암 혜산선사가 건립하여 한주실 (閑主室)로 사용하고 있다.


삼성각


1941년 능파스님이 건립하였다.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봉안하기 위하여 6평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86년과 93년 2차에 걸쳐 우암혜산선사가 보수,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는 법당을 바라보고 동향(東向)으로 건립되었으나 법당과 같은 방향인 남향(南向)으로 바꾸어 세웠다 삼성각의 현판은 구당의 글씨이다.



내소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나무에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보니 마치 오도전륜대왕으로 부터 환생을 받아 피어나는 생명 같이 느껴졌다.



부안 내소사


입장료 : 성인 3000원

주  소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내소사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전화번호 : 063-583-7281

홈페이지 : http://www.naesosa.kr/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길




내소사 전나무 숲길


부안의 유명한 사찰인 내소사에는 전나무 숲길이 있다. 매표소인 일주문에서 부터 천왕문까지 높다란 전나무가 길의 양쪽으로 멋지게 자라 있다. 

약 600m정도로 잠시 걸으면 내소사가 나온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길가 양 옆으로 늘어진 전나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푸른 색의 전나무 숲도 좋지만 나무가 붉게 물든 가을이나 눈이 온 날 들리면 더 멋질 것 같다.


내소사 가는 길


전나무는 젓나무라고도 하고, 높이는 40m에 달하고 작은 나뭇가지는 털이 없거나 약간 있으며 겨울눈에는 털이 없으며 수지가 약간 묻었다.


전나무 숲 이야기 


잎은 침형으로 길이 4㎝로서 뒷면에 흰 기공선(氣孔線)이 있다. 꽃은 4월 하순에 피고, 열매는 원통형이며 길이 10∼12㎝로서 위를 향하고 10월 초에 익는다. 실편(實片)은 둥글고 성숙하면 축에서 떨어지고 포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나무


우리나라 전국의 심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추위에 강하여 전국 어디서나 월동이 가능하다. 생육적지는 토양습도가 높고 공중습도도 높은 곳이다.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며 어려서는 강한 나무그늘 속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이다. 재식한 뒤 7, 8년까지는 매우 느리게 자라지만 그 이상이 되면 생장속도가 빨라진다. 


전나무 숲 이야기


나무 모양이 아름다워서 도시 정원의 정원수나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공해와 에틸렌·아황산가스에 약하여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수종이다.


아름다운 숲 우수상


내소사


내소사 뒤의 관음봉




내소사 전나무 숲길



 

 


 

부안 청자박물관

Buan Celadon Museum

 


 

청자잔 모양의 부안청자박물관

 

부안청자박물관은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살아 숨쉬는 고려의 상감청자를 만나 볼 수 있는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세계도자기 가운데 으뜸인 고려상감청자를 제작하였던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에 2011년 4월에 개관하였다.

국가사적 제69호인 유천리요지의 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하였으며 비생의 청자잔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청자박물관 1층

 

3층으로 되어 있고, 전시동, 체험동과 야외사적공원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진다. 전시동 2층은 진품의 고려청자를 통해 청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청자역사실, 청자명품실이 있다.

 

부안 사진 전시

 

청자역사실, Hall of Celadon History


 

청자역사실은 고려삼강청자의 아름다운 무늬와 청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유천리7구역 청자가마터 발굴유물, 및 다양한 청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도자기의 역사

 

청자는 처음 중국에서 만들었던 제작기술을 고려시대에 받아들여 만들기 시작하여, 500여 년 동안 애용된 실용성과 장식성을 고루 갖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세계에서 자토로 만든 그릇에 유리질의 유약을 입혀 고온으로 구워낸 '자기'라는 것을 최초로 창조해낸 나라는 중국이며, 10세기경 중국 오월국의 국가 기밀이었던 자기제작기술을 전수받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다.

 

영상 안내 공간

 

한국과 중국은 다른 나라가 16세기, 17세기까지 도기를 사용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자기를 만들 사용한 선진문물을 지닌 나라로 세계도자사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남북국시대(9~10세기 초) 사람들은 중국 당나라와의 교류를 위해 자기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시대상호아 속에서 10세기경 중국 오월국이 북송에 의해 멸망하면서(978년) 월주요의 몇 몇 자기인들이 고려에 들어와서 그들에게 고려의 도기장인들이 청자 제작기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증거로 고려 초의 자기 가마는 벽돌을 쌓아 만든 중국식 가마와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중국자기와 색과 형태, 무늬가 유사한 해무리굽 찻잔과 꽃모양 접시 등이 만들어졌다.

 

꽃모양 청자

 

고려 중기에도 중국과의 문물교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청자의 형태와 유색, 그릇 굽는 방법, 무늬 등은 중국 북송대 여요와 남송대 관요와의 관련성이 엿보인다. 고려 중기인 12세기 후반 경에 우리만의 독자적인 삼강청자가 개발되었고, 고려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삼강청자는 계속 유행하면서 일부 고급 청자에서는 중국 원나라 청화백자의 무늬와 그 형태를 닮은 청자가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고려청자는 발생에서 쇠티까지 형태, 유색, 무늬 등에서 중국청자와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역사적으로 밀접한 영향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자양각연꽃모양향로

 

고려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상감청자는 계속해서 유행하며 일부 고급 청자에서는 중국 원나라 청화백자의 무늬와 그릇 형태를 닮은 청자가 만들어진다. 이 시기 청자는 반복되는 무늬가 꽉차있어 화려해 보이지만 전성기의 맑은 비색은 찾아 볼 수 없으며, 그릇이 두꺼워 투박한 느낌을 준다.

 

청자 연화넝쿨무늬 접시 등

 

 주로 사용된 무늬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와 꽃, 나비, 버드나무와 갈대가 있는 물가에서 노니는 새의 모습, 긴 꼬리를 휘날리며 구름 사이를 나는 봉황, 점처럼 단순하게 표현된 그릇 사이를 나는 학의 모습, 별모양처럼 생긴 모란과 넝쿨을 표현한 꽃무늬 등이 있다.

 

청자 철백화 국화무늬 병

 

고려 말 쇠퇴기의 상감청자는 14세기 새롭게 등장하는 조선왕조로 이어져 분청사기의 무늬와 그릇형태에 큰 영향을 준다.

 

청자 음각 넝쿨무늬 입 넓은 병

 

청자 상감 봉황 연화넝쿨무늬 발

 

 

 

 

청자명품실, Room fo Materpiece Celadon


 

청자명품실은 명품청자와 나전칠기 전시대의 청자를 전시하여 생활 속에 청자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청자명품관

 

상감청자란 그릇 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홈을 파고, 홈에 다른 색깔의 흙(하얀 흙, 붉은 흑)을 메워 넣는 방법으로 무늬를 새긴 청자를 말하고, 철화청자란 유약을 입히기 전에 철분이 많이 함유된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그릇 표면에 그림을 그린 후 유약을 발라 구워낸 청자이다. 그리고 비색청자란 음각, 양각, 투각, 상형 등의 방법으로 무늬를 넣되 안료를 사용하지 않은 푸른빛이 나는 아름다운 청자이다.

고려청자

 

전북에는 유명한 고려시대 가마터가 많이 위치하고 있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가마터는 1983년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1022년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했던 고려 초기 가마로 밝혀졌다. 고려시대 청자와 백자를 함께 제작하였으며, 찻잔, 잔과 잔받침대, 장고, 접시, 발, 병 등이 주로 만들어졌다.

 

청자 상감 갈대무늬 주자

 

전남 함평군 손불면 양재리 가마터와 전난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가마터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가마로 추정된다. 녹색을 띤 조질청자와 철사안료로 무늬를 그린 철화청자가 주류를 이루며, 철분이 다량 함유된 유약을 씌워 검은 색이 감도는 흑유자기와 비색에 가까운 양질 청자도 소량 나왔다.

 

청자 연꽃줄기무늬 매병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18호 청자가마터는 부안청자를 대표하는 진서리 청자가마터 가운데 1990년에 발굴 조사된 곳이다. 무문청자를 비롯하여 음각, 압출양각, 철백화, 투각, 상감 등 다양한 기법으로 무늬를 장식한 찻잔, 발, 잔, 매병, 접시 등의 비색청자가 다량으로 제작되었으며, 가마도 1기가 조사되어 부안청자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이 청자들은 부안청자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청자 구름무늬 병

 

또한 전북 부안국 보안면 유천리 3구역 청자가마터는 부안청자를 대표하는 유천리 청자가마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정식으로 조사되지는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이곳에서 유출된 파편이 이화여대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최상품의 비색청자와 삼강청자, 상감 백자 등이 나와 부안청자의 실체를 알리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자 국화무늬 피리

 

청자 국화무늬 표주박 모양 주전자

 

청자 음각연화무늬 참외모양 주전자

 

고려청자와 불교문화 등 전시

 

청자와 자개

 

청자 바둑판

 

청자 서예도구

 

청자 불교 도구

 

2층 관람을 마치고 1층 전시동으로 가면 청자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청자제작실, 놀이와 체험을 통해 청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청자 체험실, 국내외 박물관과 교류전 및 각종 특별전시를 위한 기획전시실, 특수영상실로 이루어져 있다.

 

 

청제제작실, Celadon Workshop


 

청자제작실은 갯벌에 묻힌 유물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바다터널을 지나 부안 앞 바다에 잠기었던 자기를 발굴하여 복원하는 영상을 보고 난 후에 자동문이 열려 들어갈 수가 있다. 상감청자의 제작과정과 개경으로 청자를 운반하는 경로를 볼 수 있다.

 

부안과 청자

 

무늬 새기기

 

조각된 흙 메우기

 

가마

 

개경으로 향하는 청자를 담은 배

 

 

청자체험실, Room of Experiencing Celadon


 

청자 무늬 탁본

 

기획전시실


 

기획전시실

 

기획전시실

 

청자 운학상감 항아리

 

백자 달항아리

 

 

 

전시관 1층


 

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보니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냥 눈으로만 보고 빠르게 나오면 20분 정도이면 전부 둘러 볼 수 있을 것 같다.

1층 왼편에는 카페가 있고, 오른편에는 컵과 그릇, 접시 등을 저렴하게 파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전시관 1층 카페

 

독특한 모양의 판매중인 잔

 

다양한 청자 등도 판매 중이다.

 

 

 

부안청자박물관

 

주소 : 전북 부안군 보안면 청자로 1493 (유천리 798-4)

전화번호 : 063-580-3958

관람시간 : 3월~10월 (10:00~18:00), 11월~2월 (10:00~17:00)

휴관일 : 1월 1일, 추석날, 설날, 매주 월요일

관람료 : 어른 3,000원 / 청소년 군경 2,000원 / 어린이 1,000원)

 

 

 



From-Moon Travel in Buan

부안, 변산반도에서의 하루




변산반도 여행



[From-Moon 변산반도 당일치기 여행 일정]


청자박물관 → 내소사 곰소염전 → 부안영상테마파크  → 격포해변, 채석강 → 수성당 → 적벽강 새만금방조제






프렌치토스트와 셀러드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침으로 프렌치토스트와 셀러드로 가볍게 먹고 부안으로 출발~ ^^




부안 청자박물관



청자박물관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간을 타고 가다가 서해안고속도로로 바꾸어 줄포ic에서 나와

 변산반도의 남쪽에서 첫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들린 곳은 줄포IC에서 가까운 '부안 청자박물관'이다.


입장료 : 3000원


AM 10:30


청자양각연꽃모양향로


다양한 청자를 볼 수 있는 곳으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역사와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의미가 있을 곳이다.

주말인데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이 우리 뿐이네 ㅠ.ㅠ


천천히 텍스트를 읽으며 관람하니 1시간 정도 볼 수 있었다.




느티나무집 식당



느티나무식당


다음 여행지인 내소사 입구에 가니 식당들이 많이 있다.

산 아래 묵, 파전 식당이 많이 있는 곳의 풍경이다.

11시 30분에 도착하여~ 내소사를 들어가기 전에 식사를 하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줄포의 '제주쌈밥'이나 곰소항의 '현정이네' 같은 식당을 들릴까 했는데,

시간이 바로 내소사로 오는게 좋을 것 같아 내소사 앞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기 전에 확인해보니, 내소식당과 느티나무집이 리뷰가 많던데 다른 식당도 비슷 비슷할 것 같다. ^^


AM 11:30


산채비빔밥


해물파전


산채비빔밥과 해물파전을 먹었는데, 익히 알고 있을 평범한 맛이다. 

역시 산채비빔밥은 수덕사 아래 식당들이 잘하는 것 같아 ^^;;

식사를 한 후에 내소사로 들어갔다.

내소사 입장료는 성인 3천원이다.




내소사, 來蘇寺



내소사 전나무길


내소사로 가는 길에는 전나무가 길게 늘어진 길이 유명하다. 

가을에 색이 붉게 되었을 때에 들리면 멋질 것 같다~ ^^

전나무숲길을 지나면 내소사가 나온다. 

내소사 입구는 벚꽃나무길이 있어 가을 뿐아니라 봄에도 꽤나 멋질 것 같았다.


PM 12:00


내소사


내소사는 사찰 자체도 멋지지만 절 뒤에 있는 관음봉이 절경이다.

부안에 오기전에 사실 1박을 하고 둘째날 쌍선봉, 직소폭포, 관음봉 등 등산을 하려했는데, 

사정이 생겨 하루만 여행을 하고 돌아가게 되어서 아쉬웠다. ㅠ.ㅠ

다음에 등산을 하러 한번 다시 와야겠다~^^


내소사





슬지제빵소



슬지제빵소


부안으로 오기 전에 부안의 카페를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괜찮은 카페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 슬지제빵소이고, 

또 딱히 갈만한 카페가 없어 슬지제빵소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갔다.


PM 13:30


슬지네찐빵


커피는 평범하지만 괜찮은 정도였고,  찐빵은 팥이 그렇게 달지않아 나는 좋았는데, 

민핫은 달지않아 평범했다고 입맛이 달랐다. 생크림찐빵이 커피와 마시기에 좋았다.

분위기는 여성이 참 좋아하게 생겼고, 사진을 찍을 스팟이 있어 인기를 끌만하다.

손님이 많아 좀 기다려야 할 수 있지만, 여행 중에 카페를 찾다보니

변산에 갈만한 카페도 이곳 정도인 것 같다.




곰소염전



곰소염전


슬지제빵소 길 건너에 곰소염전이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곳인데, 이 날에는 염전이 비여있었다. ㅠ.ㅠ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고 다음 여행지로 향하였다.


물이 없던 곰소염전




부안영상테마파크



부안영상테마파크


사극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한 부안영상테마파크는 궁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3월 동안은 입장료가 무료이었다. ^^ Lucky~~


근정전


이곳은 창덕궁을 재현해 놓았는데 관리가 잘 되어 있지는 않았다. 

많이 훼손되고 생각보다는 그냥 그랬다. 

부안영상테마파크를 가는 것 보다는 진짜 창덕궁을 보는 것이 훨씬 좋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세트장이기에 왕의 자리에 올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PM 15:00


왕의 자리에서 바라본 누각




채석강



격포해변


변산반도를 온 것은 채석강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제서야 채석강을 보다니!! 설레이는 맘으로 채석강으로 향하였다.

채석강으로 가는 격포해변으로 들어가니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해가지고 있는 서해바다가 보인다.

울퉁불퉁 신기하게 생긴 퇴적암층을 지나 채석강의 신기한 풍경을 즐겼다.


PM 16:00


서해바다


신기한 퇴적암층


채석강




계화도 식당



계화도식당


변산반도에서 유명한 먹거리는 꽃게장, 백합죽, 바지락죽, 바지락무침, 바지락전이기에 

한번에 다먹을 수 있는 백합정식을 먹기 위해 대명리조트 앞에 있는 계화도 식당에 갔다.

백합정식이 3만원인데, 백합탕+백합찜+바지락죽+바지락무침+바지락전 이 나와서 한방에 끝 ^^!

백합찜이 개인적으로는 Good ^^


주변에 다른 식당으로는 선광식당, 군산식당, 새전주식당, 변산온천산장, 백합식당 등이 있었다. 

전부 리뷰도 많고 유명한 곳이니 아무곳이나 들려보아도 될 것 같다. ^^


PM 17:00


백합정식




수성당



수성당


저녁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배가 불러 산책을 할겸 수성당과 적벽강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수성당은 뭐하는 곳인지 몰랐는데, 가고보니 헐!!! 무속신앙과 관련된 곳이다.

어느 무속이지 수성다에서 제를 지내고 있었다 ㄷㄷㄷ

분위기가 요상해서 수성당 앞 바다를 짧게 보고 적벽강으로 향하였다.


PM 18:00


해지는 수성당 앞 바다




적벽강


적벽강


수성당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적벽강에 갔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노을이 멋지게 있는 적벽강을 볼 수는 없었다.

아~ 푸른하늘이 너무 그립다~

적벽강을 끝으로 부안 여행을 마무리했다.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군산으로~ ^^


다음에 부안에 올때에는 쌍선봉, 직소폭포, 관음봉을 향하는 등산을 하러 와야겠다.~


PM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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