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운주산 고산사




세종시 고산사


미세 먼지가 없이 맑은 날이 오랜만이기에 산에 가고 싶어 오랜만에 산으로 향하였다. 

높지 않은 산을 가고 싶어 어려서 갔던 산인 운주산에 갔다. 


고산사


운주산은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낮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460m정도로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천안 공주 조치원, 청주 일대를 볼 수 있다. 

에는 운주산성이 있고, 꼭대기에는 '백제인의 얼'이라는 탑이 있는 곳이다. 백제인의 얼이란 탑이 있듯 운주산은 백제와 연관이 많은 곳이다.


백제 운주산 고산사 일주문


운주산성은 백제군이 나당연합군과 싸우던 곳이다. 또한 백제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주류성이 전의 일대라는 학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운주산 초입에 있는 고산사(高山寺)에도 백제와 관련되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종루


입구에 가장 먼저보이는 종루의 이름은 백제루(百濟樓)이다. 종루부터 백제를 기리는 모습이 느껴진다. 


백제루


백제루 안에 있는 범종은 백제삼천범종이라 한다. 백제삼천범종은 백제의 의자대왕과 백제 부흥군의 혼령을 위로하고 극락완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된 범종이다.


백제루 옆 모습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한 뒤, 백제 의자대왕은 왕비와 왕자를 비롯한 일만이천 명의 유민과 함께 당나라 장안으로 끌려갔다. 의자대왕은 나라를 잃은 분노와 슬픔 때문에 중국 낙양에서 병사하였고, 당나라 조정은 북망산에서 장사를 지내 줬으나 지금 왕릉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제인들은 주류성에 모여 나라를 되찾기 위한 부흥전쟁을 벌여 3년 여의 오랜 시간 동안 투쟁하였으나 내분과 오랜 전쟁으로 패퇴하고 말았다.


백제삼천범종


그로부터 1,3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타국만리에서 쓸쓸히 승하한 의자대왕과, 주류성에서 백제를 재건하려다 끝난 백제 부흥군의 명복을 빌고 극랑왕생을 기원하는 '백제삼천범종'을 조성하여 아미타 부처에게 시납한 것이라고 한다.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


백제루 아래를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가면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비명에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원찰(願刹)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백제극락보전


법당의 현판도 '백제극락보전'이라 되어 있다. 극란전에서는 의자왕과 백제 부흥군, 원병으로 백촌강 전투에 참전한 왜군의 위패도 한편에서 찾을 수 있다. 고산사는 1966년에 창건된 사찰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운주산이 백제의 부흥군이 최후를 맞았다는 주류성 주변이라는 학설에서 이렇게 백제를 기리는 사찰이 생겨난 것이다.



주류성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가 서기 660년 7월 18일에 신라(新羅)·당(唐)의 연합군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백제사람들의 부흥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점차 흑치상지(黑齒常之)와 복신(福信)이 웅거한 임존성(任存城)과 도침(道琛)이 이끄는 주류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세력이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크게 이겼으며, 이러한 기세로 부흥군은 200여성을 회복하였다. 웅진성 공격 실패와 옹산성(甕山城)에서의 패배로 그 기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에 전념하고 일본에 있던 왕자 풍(豊)이 돌아와(662년 5월)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세력의 지휘부 내에 분란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데에 이른다. 더욱이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倭)가 보낸 병사 2만 7천명이 백강(白江)에서 궤멸되고 부여풍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백제의 부흥운동은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건지산성(乾芝山城), 충남 연기군 전의면의 당산성(唐山城), 전북 정읍시의 두승산성(豆升山城), 전북 부안군 상서면의 위금암산성(位金巖山城) 등에 비정하는 학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이 백강(白江)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한 땅이어서 농사지을 수도 없는 땅이다. 지금은 지켜내는 곳이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굶주리기 쉽다"고 적혀 있어 위치 추정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세종 운주산 고산사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고산길 92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88-3)

연락처 : 044-862-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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