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 테두리 -

                 

              - Paul Yoon


시야를 가리는 어스프레한 어둠이 무서운가 

잔잔히 흐르는 가벼운 빗방울이 무서운가 

사물의 공간을 헤치며 뛰어가는 사람들 


나 또한 한 발자국만 뛸수만 있다면 

그러면 울지 않아도 

그러면 낮이 비웃지도 


밤의 빛을 거스르기 위한 가로등은 

단지 앞을 막는 방해물일 뿐

한낮의 빛의 세상은 누구를 위한 밝음인가


낮의 비웃음 보다

어둠, 그리고 밤 친구가 되어주렴


두려울 때 무서울 때 

달리고 싶다 

앞을 볼 수 있다면



1996年 6月, 비오던 날


밤에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려, 작은 우산을 고쳐 잡고 길을 걷는다.

주변은 을씨년스럽게 차가워 마치 혼자 동떨어진 세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에는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길을 걷다보니 보도를 가로 막는 가로등이 달려있는 전봇대가 갈 길을 계속 막는다. 

비가 내려 불편한 걸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산을 잡고 전봇대를 피할 수 있는 내가...

우산이 없으면 비를 피하려 뛰어갈 수 있는 내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뛸 수 있을까...

낮과 밤이 달라지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 것인가...

비는 계속 내리지만 비를 비하는 것이나 비를 맞는 것 또한 세상살이의 하나는 아니였는지...




▲ 비상하는 그림자



- 세상 두려움 -

                      

                    - Paul Yoon 



세상에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그 세상에 사는 존재는

쇼펜하우어를 

비웃는 자들의 공간 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마냥 무서운 곳이라면

그 세상에 사는 존재는

부처를 

존경하는 자들의 공간 일지도 모릅니다.


두 세상에 발을 들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귀찮은 파리를 죽여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하는 파계승의 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단지 하나의 단편의 끝에서 

허우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 끝의 절벽에서 뛰어 내리세요.

그리고 다른 세상을 보았을 때


무서움의 세계 또한 

아름다운 세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무진리의 괴변이 

숨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갈등 사이에 당신을 느끼세요

가치있는 혼동의 삶을..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던 시간이 있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답인지 모르며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한 생각이 온통 목 위에 달린 소우주 속에 위성처럼 맴돌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좁은 지구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의미를 담아 마치 위대한 인물인 양, 철학책을 내놓고 또 어떤 이는 성자가 되어 타인과 다른 가치를 보여준다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가치이고 무엇이 진정한 답인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의 진리는 다른 누군가에는 거짓이었고, 누군가의 이율배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정립이었다.

아등바등 도토리 키재기의 순간에 서로의 의미만을 진정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다양한 혼동 속에 가치가 있을까? 아니, 생각치 말자. 

단지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속에 생이 하루 유예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자.


混沌






▲ 길냥이, 순이



- 차가운 나날의 이방인 -


                             - Paul Yoon


외딴 돌계단의 주인 고양이 모르게 

하늘의 물 먹고 자란 흰 꽃송이

밤새 세상을 위로하는 꽃밭이 되었다.

 

해는 뜨고 외딴 돌계단의 이방인은

자연을 방황하던 길 고양이 쫓아버린 것은

위대한 영장류 직립보행인.

 

길 잃은 보행인 생각 없이 감히 한 발 들어

온돌방 뜨거워진 체온으로

하늘의 창조물을 부수는 악역에 만족한다.


순백한 꽃밭 거닐어 때 타기 쉬운 흰 수제 카펫을 만든다.

인공의 신(神)을 신고 자연의 창조물인 카펫을 밟는다.

작은 고양이 발자국이 그려질 공간은 없었던, 순결의 카펫.

 

옛 주인에게

신(神)의 꽃밭은 가혹한 시련.

이방인의 친절은 이기적인 공생.


- 2014年 겨울에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정원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습도가 높은 눈이 차곡히 쌓여, 가지보다 5배나 두꺼운 눈이 주객이 전도되어 마치 자신이 원래 나무이었던 것 처럼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한 결정의 차가운 눈 꽃이 세상을 덮었다.

오늘 따라 유독 차가운 돌계단에 쌓인 눈 때문인지 매일 아침 밥을 먹으러 찾아오는 길냥이 순이는 보이지 않는다. 

날이 추운 겨울은 음식물 쓰레기까지 얼어 길고양이에게느 혹독한 계절이다. 

그런데 추위가 순이를 막은 것이 아니었나보다. 흰 눈으로 된 땅에 어지럽게 생긴 고양이 발자국을 보니, 내가 문을 열어 놀란 순이가 도망을 갔나보다. 눈은 계속 내리고 고양이의 발자국은 점점 사라진다. 마치 내 주변으로 오지 않았던 것 처럼 금새 평평한 흰 바닥으로 변해버렸다.

추운 날씨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따뜻한 바닥에 포근한 이불을 덮는다. 

아직 밖은 춥고,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나에게는 따뜻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날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평등하다.

 

 ▲ 해가 지는 시간

 


- 사막에도 달은 뜨고 -


                                     - Paul Yoon

 

신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위해

모래 사막 위에 펼쳐둔 카페트 한 조각에 무릎을 마주치고

마치 삶 다 살아 모르는 것 없었던 무거운 고개 숙여

아무런 속죄 없는 자연의 열기를 받아들여

몰래 숨겨두었던 슬픔 한 조각 기도 속에 풀어두어

눈물 흘리는 자를 감히 세상의 악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자가 있는가 


디모데를 덮으며 느낀 참된 배움의 길 속에 한가지 진실 만을 추구하지 마라

화엄경 읊조린다 눈 감고 해탈의 심안으로 세상을 등지지 마라

종이와 이상을 떠나 무거웠던 무릎 가던대로 내려 놓고

티끌없는 소망 가벼워질 고개 숙여 바다에 산에 풀어놓아

자신의 욕망의 끝이 아닌 그대로의 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해는 오늘도 제자리에서 마음의 빛을 내리고

하루종일 토끼들이 방아만 찧을 것 같았던 달은 여인의 미소로 포근한 것을...

몇 걸음 걸어봐야 높은 산 뿐, 기껏해야 깊은 바다일 뿐,

그의 사막은 결코 높지도 깊지도 않으나, 작은 조각이 되어 하늘을 날을 줄 알으니...


...

...

...

 


이미 복잡한 그대들 보다 아직은 순수하지 아니한가!

 

 - 2012년 10월에

 

늦은 밤에 하늘에 뜬 달을 보니, 지금 동시간대에 이 달을 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속 사찰에서 바라보는 달과, 멀리 사막 위에 떠 있는 달과, 지중해 언덕 위에 떠 있는 달은 같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다르게 받아 들여 질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같으나 이를 향해가는 마음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뜨거운 사막에 작은 카펫 깔고 신에게 기도하는 이는 그가 향하는 믿음에 의미를 담고, 풍경소리 바람 타고 흐르는 향의 바다에 기도하는 이는 그가 향하는 믿음에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기도를 한다는 것은 평등하다.


이미 복잡한 당신의 마음 또한 휴식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직은 당신도 순수하지 아니한가!



 

반복적인 일상에서 개성을 찾고 싶다.

 

▲ 자은사, 중국 시안

 

 

-
거짓 -

                                    - Paul yoon

 

삶을 갈구하는 나그네

부처 떠난 티벳 하늘 밟아 보겠다고, 오만리 너털걸음 무거운 발걸음.

마지막 구릉 히말라야 남겨두고 만난 소끄는 소크라테스, 사색하는 목동.

을 불러 한들 한들 소떼 가슴 속에 풀어놓고, 나그네 걸어온 길 그 고뇌의 공간으로 떠나가네.

의 삶은 버려진 초원, 남은 삶은 풀 뜯는 생명, 사라진 소크라테스 존재하는 목장.

이상을 갈구하는 나그네 길을 멈춰 작은 구릉 그 히말라야 정상에 너털웃음 던져두고

"마음의 티벳이여! 난 그저 초원에 남으리!!" 하늘 향해 소리쳐 진공을 뚫어본다.

무거운 봇짐 저멀리 내어 놓고, 짚신 지푸라기 여물로 내어주고, 풀뜯는 의 손짓에 꿈을 이동한다.

소끄는 나그네 사색하는 목동, 방황하는 맡이하려 선문답하나 적어 놓는다.

마치 부처인양.

 

- 2012年 4月

 

 

인간의 일상 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서.

 

- 1970년 법정스님 '종점에서 조명을'

 

산다는 것이 특별한 것은 없다. 해가 뜨고 눈을 뜨고 움직이고 먹고, 웃고 울고, 행복하다 슬퍼하고, 좌절하다 일어난다.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가 하루 종일 망친 기분으로 살때도 있다. 어떠한 일이 있었던 시간은 지나고 또 다시 반복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생이 주어진 범주 내에서 참 많은 생각과 일을 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옳은가, 나는 나 답게 살고 있는가, 알 수 없는 형이상학에 얽매여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이 만물의 영장 중에서도 또다른 특별한 존재인양 인식하며 산다. 하지만 마른 우물의 주인이 되어 그 공허한 가슴을 채울 물 한모금을 찾고 있다. 하지만 답이 있는가 그저 숨 쉬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중요한 것을...

 

 

Enlightenment


차 향기를 마시며

 


 

- 香 氣 -

 


                         - Paul Yoon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산봉우리

자신을 찾아보려 새로운 정신 찾아

시냇물 흘려 떠나 보낸다.

 
흙의 힘을 받아 한없이

떨어지고, 쏫아지고, 넘쳐흐르고,

애꿎은 구름 송이 원망한다.

 
낙원찾아 마땅히 돌아올

꿈의 여행자 기다리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받아들일 뿐인 것을

 
바다라는 큰 생명 찾아 떠난

목적의 방랑자 멀리화 향기 머금은

찻잔 속에 숨어버릴 것을

 
시내는 아직 흐르지 않았다.

시내는 단지 떨어질 뿐이다.

시내는 그저 담겨질 뿐이다.

 
인간의 냉정한 육체 속에

고귀한 영혼을 팔아버린다.

흐를 곳은 단 한곳 뿐

무덤이란 이름의 안식처

 
2010年, 초겨울에 觀音茶 한 잔 마시다가....

 

 

 

약간은 쌀쌀해진 초겨울 밤, 차가워진 발 끝을 녹이고 싶어 차를 준비했다.

발이 시려웠는데 발과 멀리 떨어진 입으로 들어가는 차를 찾으니 같은 몸이지만 참 먼곳의 매체를 찾아 나섰다는 생각이 든다.

 

철관음 이파리를 자사호에 넣고 뜨꺼운 물을 부었다.

맑은 물에서 차가 우러나고, 작은 공간은 차 향기로 충만해진다.

가득하던 차 향기는 찻잔에 담긴 찻물을 차가운 나의 몸에 넣으며 사라졌다.

차갑던 몸에 약간의 온기가 흐른다.

 

단순히 차를 마셨다.

그런데 기분 좋게 차를 마시고 나니, 문득 작은 찻잔에 담긴 차가 크게 느껴진다.

 

산 속의 작은 샘에서 맑은 물이 나와 계곡을 타고 낮고 낮은 바다를 향하여 흐르며 많이 더렵혀 졌다.

소수의 물이 바다에 모여 순화되다가 증발해 하늘에 모였지만, 중력의 제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다시 대지를 지려밟는다.

비의 희생을 거름으로 자라난 녹음은 생명을 발하지만, 계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돌고 돌다 갖혀진 물과 초록의 생명이 인공을 더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남아 내 앞에 놓인다.

오랜 여행을 마친 자연의 존재를 단순히 한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전혀 자연적이지 못한 나란 존재의 무덤 속으로 인도하였다.


육이 멈추고 영혼이 없는 분진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때까지...

지긋 지긋한 자연의 순환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묘비명 같은 시 한 구절 남긴다.

 

 

 


계절은 언제나 돌고 돌아


▲ 해지는 시간, 제주 용눈이 오름에서




- 매미의 코스모스 -


                           - Paul Yoon

 

가을의 밤,

떨어지던 마른 잎사귀에 눈을 잃어

보지 못했던 아니 보지 않았던

이별의 데생, 그렇게

 

겨울의 새벽,

얼어가던 심장의 눈물에 마음을 잃어

보내지 못했던 아니 보내지 않았던

그리움의 족쇄, 어느덧

 

봄의 아침,

두근두근 그윽한 향기에 마음을 열어

잊고 싶었던 차마 잊지 못했던

사랑의 굴레, 그리고

 

여름의 낮,

화려한 꽃 잎에 눈을 열어

보기 싫었던 그래 보고 싶었던

추억의 유화, 이제는

 

어설픈 성충 놀이

건조한 껍질 벗어 투명한 날개 들어

보지 못했던 아직 보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 하늘에 연주하리라!

 

미증유의 참사 속

동백꽃 만개한 작은 섬 그늘 삼아

잊지 못했던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욕망의 샘물, 바다에 흘려보내리라!


- 2010年 7月 23日



1년이란 시간을 계산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겹게 순환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반복을 견디다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생각하는 존재의 마지막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가을이 되면 生命의 기운이 사그라든다. 푸르던 잎은 마지막에 붉게 타오르다 소멸한다.

겨울이 오면 새로운 生命을 위해 깊게 웅크려 忍苦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음을 설레이는 봄이와 여름에는 푸르름이 충만하다.


또 다시 가을이 되면, 또 다시 겨울이 오면, 그리고 봄이 되고, 여름이다.

그렇게 시간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데던 매미는 번데기로 忍苦의 시간을 보내 마침내 하늘을 난다.


마치 질서정연한 우주의 코스모스를 담은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를 이해하기에 나의 정신은 너무 가냘프고 내의 육체는 너무 하찮다.


Cosmos in Season



늙어감을 배운다





- 늙어간다는 것은 -

 

                            - Paul yoon


 

변하였다! 나는

 

세상의 인간으로 태어나

태양 빛 맞으며 산화(酸化)되어

지루한 장맛비 적시며 동화(同化)되어

차가운 눈발 맞으며 극화(劇化)되어

 

하 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고

 

스스로 나이를 잊어

그저 세상살이 하루살이

살다보니

 

변하였다! 나는

 

동경(銅鏡)의 녹슨 연(緣)을 바라보며

한 줄 늘어나는 주름 보며

 

그렇게

늙어간다는 것을 배운다.

 

- 2015年 5月 25日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하루 하루 쌓인 것은 그저 나이가 되어 버렸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경험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쉴틈 없이 늙어가기 위해 노력을 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된다.

지금 숨을 쉬며 한번의 호흡으로 삶을 갈구하고 있는 시간에도 나이의 시계는 잘도 돌아만 간다.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한해가 간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새싹은 피어나고, 장마는 찾아오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린다.


늘 똑같은 반복이 지속되는 지겨운 순환의 연속에서 머리에는 새치가 나오고, 눈가에는 주름이 생겨간다.

아쉽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변한 것은 외모만은 아니다.

호기심 많고, 상상이 많았던 정신의 세계는 보다 단순해지고 평범해 졌다.

아직 다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다 아는 것 처럼 행동하기까지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마치 세상을 떠나도 아쉬울 것은 없다는 듯 스스로 가식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영, 혼, 육.

모든 것이 변하였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것이 무슨 죄이랴.

늙는 것도 내게 주어진 선물인 것을...


오늘도 늙어간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세상은 지겹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주지만, 주변에 새롭게 일어나는 미래란 공부거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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