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 천양희




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백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 맴돌다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광대함은 고작 세제곱미터 안의 작은 울음이었으니, 

생각와 이상의 끝은 넓으며 좁은 상상 속의 종이 안의 물음이었구나.



나는 나 자신이 만든 감옥의 창을 통해 

별을 찾을 수 있었다


- 단 두 줄



구속을 푸는 자유의 열쇠는 나의 호주머니 안에 고이 간직 되지만, 아직 나는 열쇠를 어느 호주머니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네.





땅에 낡은 잎 뿌리며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을 쓸어버리는

바람처럼 살았다

그것으로 잘 살았다, 말할 뻔했다


- 바람의 이름으로



천상병 시인은 편안히 하늘로 돌아갔지만, 천양희 시인은 돌아갈뻔하였구나.

땅에 떨어지는 생 잃은 이파리는 바람에 날려 또 어딘가로 날아가 하나의 분진이 될 것이다.



거미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미줄을 뽑지 않는 것처럼

우리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소유로 살다 가는 것이다


- 무소유



자신이 현재 가장 떠올리는 것이 구속이고 이를 버리는 것이 해탈이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사랑을 떠올리면 사랑을 버리고, 즐거움을 떠올리면 즐거움을 버려야 한다. 나를 구속하는 물건에 마음을 버려 무소유가 된다지만, 어차피 삶을 떠날 때에 의미 없이 버려질 것들 잠시 함께 친구로 남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마음은 色이 없어 슬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色

비가 내리면 비의 色

정처 없이 떠도는 시간의 방랑 속에 

눈을 감고 상상 하는 色의 여행은

어느 개성에 걸려 물이 들까


하아~ 나는 오늘도 나를 찾아 고민한다 



왜 그럴까

평생 바라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구별 없는 하늘에 물었습니다

구별되지 않는 것은 쓴맛의 깊이를 모른다는 것이지

빗방울 하나가 내 이마에

대답처럼 떨어졌습니다


- 잘 구별되지 않는 일들



오늘은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하늘 하늘 내리는 눈을 보니 마음의 따뜻함이 포근해 진다.

하지만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눈을 대하는 자세도 눈을 맞이하는 마음도 전과 같이 순수하진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황홀함이 줄며 난 하늘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월이 변한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조금은 더 여린 마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해도 하는 것이 후회밖에 없어

나는 아직도 아픈 신발을 신고

어디로 가고 있나

그래도 하늘은 아무것도 슬프지 않고

바람은 아무것도 안타깝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춤추는 자와 춤을 구별하겠는가


- 후회는 한여름 낮의 꿈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벗어날 수 없는 후회의 고리에 맴돈다.

이제는 일탈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다잡을 때도 되었는데, 무엇이 두려워 스스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까




언제부터였나

시간의 넝쿨이 나의 담을 넘고 있다

누군가가 되지 못해 누구나가 되어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이지

돌아보니 허물이 허울만큼 클 때도 있었다

놓았거나 놓친 만큼 큰 공백이 있을까


- 놓았거나 놓쳤거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보니, 꽤나 살았는데, 남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죽음은 두렵지만, 하루 하루 죽음으로 향해 간다.

하지만 지겹게 반복되는 삶에 일탈은 어쩜 無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루의 삶이 유예되며 왜 내게 긴 숙제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답을 적고 싶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말들하고요

나는 가끔 뒤돌아보았어요

그늘을 생각하면

나는 미리미리 서늘해져선

한나절이라도 내가 먼저

봄이 되고 싶었어요


- 그늘과 함께 한나절 



봄은 떠나가고 다가온다. 

민들레 활주로 날아 올라, 태양의 바람타고 잎을 떨궈, 눈 썰매 타고 대지에 내리면

또 한번의 봄은 다가온다.



산은 저렇게 말이 없고

산속에 누운 너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마치 한가지로

너는 몇 년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것은 너의 영원한 레퍼토리

그러나 그렇지만

바람 불고 비는 또 내려

얼어붙은 내가 새롭게 놀라지만

오늘은 전화할 데가 없어

하루가 너무 길다

그 많던 오늘은

어디로 다 가버린 것일까


산다는 게 이렇게

미안할 때가 있다니


- 마찬가지



산다는 게 미안하면 미안하면 미안하면, 다시 바람을 타고 비를 내려 흘러 버리자




지상에는 나라는 아픈 신발이

아직도 걸어가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실패의 힘으로

그 힘으로


- 실패의 힘



하루에도 몇번씩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경험하는 현대인에게

당신과 같은 동지가 하나 있다고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이겨내자 말해주고 싶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어머니는

지는 꽃의 마음으로

어린것들의 앞날을 염려하셨다


- 오후가 길었다



나와 당신의 生에 축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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